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八道地圖 팔도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23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1帖(8折),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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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尙驥의 《東國地圖》는 한반도 윤곽의 보다 정확한 표현, 百里尺이라는 독창적인 축척의 사용, 산천과 같은 자연적 요소뿐만 아니라 취락, 교통로, 봉수, 산성 등과 같은 다양한 인문적 요소가 담겨진 지도이다. 정상기 지도의 사본은 규장각뿐만 아니라 고려대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성신여대박물관 등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정상기(1678~1752)의 字는 汝逸, 號는 農圃子로 河東府院君 鄭麟趾의 후손이며 실학자인 星湖 李瀷(1681~1763)과도 친분이 두터운 관계이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조선전기 官 주도하에 제작되었던 지도와는 달리 개인의 작업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이후 후손들에 의해 傳寫·수정·보완되어 내려왔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크게 鄭恒齡, 鄭元霖, 鄭遂榮 등 4대에 걸쳐서 제작되었던 原圖本 계열의 河東鄭氏 가문과 鄭喆祚, 鄭厚祚로 대표되는 修正本 계열의 海州鄭氏 가문에 의해 제작된 지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원본 계열의 동국지도와 수정본 계열의 동국지도는 대부분 8장으로 분리하여 당시 휴대와 열람의 편리를 위해 만든 帖형식(地圖冊)으로 되어 있다. 또 각 分圖를 나열하는 순서나 지도의 跋文과 百里尺의 유무, 지도 여백의 註記로 지도의 계열별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다. 《동국지도》의 발문은 여러 사본에 약간의 차이를 보이며 게재되어 있는데 규장각 소장 申景濬의 『旅庵集』에도 「東國八路圖小識」이라는 題下에 실려 있다. 이는 신경준이 1770년(영조 46) 임금의 명으로 輿地圖를 제작하였는데 이 때 저본으로 사용했던 정항령의 지도에 있는 발문을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經世致用을 강조하는 星湖學派 계열의 하동정씨 가문, 利用厚生을 강조하는 燕巖學派 계열의 해주정씨 가문에 의해 계속적으로 수정, 전사되었고 이외에도 많은 역사속의 사람들에 의해서 수정·보완되면서 조선후기 지도학의 최고 정점인 金正浩의 《靑邱圖》, 《大東輿地圖》에 이르게 하였던 중요한 지도로 평가된다. 《八道地圖(古4709-23)》는 정상기의 原本 河東鄭氏 계열의 사본 지도로 규장각 소장의 지도 중에서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767년에 개명된 경상도의 安陰과 山陰이 표기되어 있고 金烏山城이 1758년에 축성되었는데 이를 표기한 것으로 보아 대략 1758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는 〈함경북도〉, 〈함경남도〉, 〈강원도〉, 〈평안도〉, 〈황해도〉,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충청도〉 순으로 총8장의 分圖로 이루어졌다. 百里尺과 跋文은 동국지도 초기 사본일수록 대부분 함경북도 紙面에 소재되어 있다. 백리척은 정상기가 창안한 축척법으로 1尺이 百里, 1寸이 十里에 해당된다. 백리척의 전체 길이는 10寸이 되고 5寸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그 백리척을 현재의 자로 재보면 각 사본들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9.6cm~9.8cm정도로 대략 1:40만~42만 정도의 축척이다. 발문에는 이전 시대의 지도가 지면의 모양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거리나 방위가 정확하지 못한 결함을 극복하기 위함이라는 지도제작 경위와 당시 《동국지도》의 원형을 파악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지도에 수록된 내용은 백리척과 발문, 인접 경계지역 그리고 산지와 하천의 자연적인 요소와 범례를 사용하여 州縣, 坊面, 鎭營, 驛, 烽燧, 倉, 교통로의 인문적 요소를 담고 있다. 그 밖의 民戶, 田結, 사찰 등의 지지내용은 수록 하지 않고 있다. (민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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