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八道地圖 팔도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古4709-23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1帖(7折),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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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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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지도(八道地圖)〈古 4709-23〉 1책 앞표지입니다.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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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를 그대로 모사·수정한 것으로 총 8장의 分圖 중 〈강원도〉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현재 북한행정구역상 강원도 일부, 남한행정구역상 강원도, 경기도, 경상북도, 충청북도 일부가 포함된다. 경상북도 지면에 있는 跋文에서는 구체적으로 八道를 나열하는 순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각 分圖의 채색을 경기·충청도-전라도-경상도-강원도-황해도-평안도-함경남도-함경북도 순으로 설명하고 있다.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古4709-23)》에서는 함경북도(표기없음)-함경도(함경남도)-강원도-평안도-황해도-경상도-전라도-경기·충청도 순으로 되어 있는데 후대에 傳寫되는 과정에서 그 순서가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의 분수계를 경계로 嶺東과 嶺西로 나뉘며, 이 두 지방은 지도에도 보이듯이 대관령(832m)·한계령(920m)·미시령(767m)·진부령(520m)·진고개(940m) 등의 고개를 통해 이어진다. 태백산맥 분수계에는 금강산(1,638m)·설악산(1,708m)·오대산(1,563m)의 표기도 보인다. 간성의 북천, 양양의 남대천, 강릉의 남대천, 삼척의 오십천 등은 동해사면의 주요 하천이다. 강원도 일대는 지형상 해발 1000m 내외의 높은 산지들이 많아 오늘날 고랭지 채소재배와 축산에 이용된다. 또 동해안에는 사빈의 발달로 해수욕장이 즐비하고 석호도 많다. 지도에서도 표기되어 있듯이 강릉의 경포, 속초의 영랑호 등이 대표적인 석호이다. 지도에는 현재 일본과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于山島(독도)도 그려져 있어 독도의 영토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하나의 증거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민경이)

  • 경기도·충청도 (京畿道·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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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를 그대로 모사·수정한 것으로 총 8장의 分圖 중 〈경기도·충청도〉 지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북한과의 군사분계선 근처에 있는 황해북도의 개성시, 장단군, 연천군, 남한의 경기도와 충청도에 해당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 되고 있는 《八道地圖(古4709-23)》는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마지막장에 있는 지도이다. 각 分圖의 순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첫 번째 장 함경북도 지도와 함께 실린 발문 내용을 검토해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발문에 “若其施彩色 則京圻純黃湖西紅白  湖南純紅嶺南則靑紅海西純白關東純靑關西白黑關北純黑~” 내용이 있다. 즉 道別圖의 순서는 경기도-충청도-전라도-경상도-황해도-강원도-평안도-함경도의 순으로 채색을 설명하고 있다. 原本 정상기의 《동국지도》 발문과 비교해 볼 때 황해도와 강원도의 순서가 바뀌어 도별도 채색을 설명하고 있다. 《동국지도》 발문은 원본과 비교해 볼 때 수정·탈락되어 사본마다 약간의 부분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八道地圖(古4709-23)》의 구성체계를 살펴보면 지도 순서는 함경북도-함경남도-강원도-평안도-황해도-경상도-전라도-경기도·충청도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역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면서 강원도와 평안도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이것은 후대 傳寫子의 오류로 판단된다. 京畿라는 말은 당나라 때 왕도의 주변지역을 京縣과 畿縣으로 나누어 통치했던 데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018년(고려 현종 9)에 개성 주변의 십여 현을 묶어 처음으로 이에 적용했다. 京都(서울)과 경기지방은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경기도는 크게 개성주변의 예성강, 파주 주변의 임진강과 京都 주변의 한강 유역권으로 구분된다. 한강유역권은 대동강유역, 낙동강 유역과 함께 일찍이 신석기시대부터 문화가 발달하여 현재 많은 유물, 유적이 발견된다. 충청북도는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신라·백제의 각축장이었으며 그 후에는 경기지방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충청남도는 금강유역권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호남지방과의 유대가 깊었다. 한강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백제는 금강연안에 거점을 두고 호남지방에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기도 했다. 금강은 지도에서 보면 沃溝界라 쓰인 부분이 본류로 공주와 부여를 지난다. 공주 왼쪽에 세모 모양으로 표시된 利仁驛 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9개의 속역을 거느린다. 북쪽에는 車嶺山脈의 명칭이 유래된 차령이 보이고 있다. 차령은 서울-제주 사이의 大路가 오가는 길목이다. (민경이)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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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를 그대로 모사·수정한 것으로 총 8장의 分圖 중 〈경상도〉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에 해당된다. 《八道地圖(古4709-23)》는 정상기의 原本 河東鄭氏 계열의 사본 지도로 규장각 소장의 지도 중에서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1767년에 개명된 경상도의 安陰과 山陰이 표기되어 있고 金烏山城이 1758년에 축성되었는데 이를 표기한 것으로 보아 대략 1758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도는 낙동강과 금호강 유역권이다. 낙동강은 영남지방의 젖줄이며, 조선시대에 영남지방은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좌도와 경상우도로 나뉘었다. 嶺南이란 말은 995년(고려 성종 14)에 10도제를 실시할 때 소백산맥의 鳥嶺(643m)과 竹嶺(689m) 남쪽 상주 관내의 도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지도에서 보듯이 태백산에서 시작되는 소백산맥은 소백산(1,440m), 백화산(1,063m)등 1,000m 이상의 산지가 많고, 풍기와 단양 사이의 죽령, 문경과 충주 사이의 이화령, 김천과 영동 사이의 추풍령(200m)등은 소백산맥의 주요 고개이다. 현재 금호강 유역에는 대구를 포함한 경북지방의 인구의 약 절반이 집중되어 있으며,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대구선 철도가 통과하여 외부와의 교통이 편리하다. 경주는 신라의 옛 서울로 신라의 유적이 풍부하기로 이름이 높다. 영일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형산강 상류에 펼쳐진 평야를 중심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성곽을 이룬 지형이다. 고려 태조 때 경주라는 명칭이 최초로 사용되었고, 성종 때 東京이라 하여 開京(개성), 서경(평양)과 함께 三京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경주 아래에 있는 金鰲山(466m)은 南山이라고도 하는데 그 빼어난 자연경관은 唐나라의 顧雲이 崔致遠(857~?)에게 지어준 시에 잘 나타난다. 장기반도는 크지는 않지만 한반도의 모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 중의 하나이며 호랑이 꼬리라 하여 虎尾串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輿地圖書』에는 冬乙背串牧場에 331마리의 말을 키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울산목장에 속해 있었다. 지도에는 네모모양으로 鎭營이 설치되었음을 알려준다. 울산에는 慶尙左道兵馬節度使營, 진주에는 慶尙道右兵營, 동래에는 慶尙左水營이 표시되어 있다. (민경이)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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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를 그대로 모사·수정한 것으로 총 8장의 分圖 중 〈전라도〉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에 해당된다. 전라북도는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이, 전라남도는 영산강과 섬진강 유역권이다. 노령산맥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만경강과 동진강은 강이라고 부르지만 유량이 적다. 금강유역권에 속하는 무주, 진안, 장수 지역 등은 전반적으로 고도가 높고 지형이 험준한 반면에 섬진강유역권에 속하는 하동, 구례 지역 등은 100m 내외의 범람원과 낮은 구릉지가 넓게 발달하여 있다. 지도에서 보듯이 크기를 달리한 원형으로 군현을 표현했고, 산지와 하천명을 표기해놓고 있다. 그 외 정사각형의 鎭營, 촛불모양의 봉수, 산성, 주요 고을과 연계된 교통로를 볼 수 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에서 표현된 범례의 사용은 후대 김정호의 《大東輿地圖》 내에 있는 「地圖標」와 같이 다양한 기호를 사용하여 많은 정보를 표기할 수 있었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長城은 영산강 유역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으로는 蘆嶺을 넘어 정읍과 연결되고 남으로 광주에 연결된다. 지도에도 이 지역의 최고의 요해처인 노령과 笠巖山城이 표기되어 있다. 입암산성은 조선 초까지 석성 터만 남아 있던 곳인데 임진왜란을 겪은 후 1597년(선조 30)에 대대적으로 수축되었다. 전주는 호남의 큰 고을로 후백제의 도읍지였고,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實鄕이자 전라 감영의 소재지였다. 金山 고을 오른쪽에 세모모양의 濟源驛은 무주의 所川, 용담의 達溪, 진안의 丹嶺, 고산의 玉包 등 4개역을 관장하는 察訪驛이었다. 龍安의 북서쪽 강가에 있는 海倉이 그려져 있는데, 조선 초 得成倉(그 이전에는 德成倉이라 불렀음)이 있었던 곳이다. 득성창은 이후 물길이 막혀 함열지역으로 옮겼다가 1482년(성종 13)에 다시 여기로 옮겼다. 이후 8개 고을은 맞은편 함열의 聖堂倉에서, 7개 고울은 옥구의 群山倉에서 맞게 하고 나머지 용안, 임피, 김제, 만경, 여산, 금산, 무주 등의 조세는 여기에서 거두어 서울로 조운하였다. 순천은 남해안의 동쪽 경상도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여수반도에서 돌산도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길게 걸쳐져 있다. 지금의 고흥반도와 여수반도 사이에 있는 白也串은 오류가 발견된다. 백야곶이 섬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후대의 전사자가 시정하지 않고 정상기의 《동국지도》 原圖를 그대로 베낀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해안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左水營이 있는데 군사적으로 매우 중시되던 곳이었다. 해남에는 서남해안의 수군의 총본영인 右水營이 표시되어 있다. 우수영은 조선 초기 무안 대굴포의 水軍處置使營에 있다가 1440년(세종 22)에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해남의 黃原으로 옮겼다. 그 후 1464년(세조 10)에 節度使營으로 승격되었다. 제주도는 크게 濟州, 大靜, 旌義로 나뉘어져 있다. 지도에서 보듯이 정의현 서쪽 지역(현재의 서귀포시 부근)이 灣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규장각 소장 《海東地圖(古4709-61)》에서는 灣이 아니라 호수로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수 십년 동안 전사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오류인데 다른 사본들에서도 볼 수 있다. (민경이)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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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를 그대로 모사·수정한 것으로 총 8장의 分圖 중 〈평안도〉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현재 북한행정구역상 자강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일부지역과 평양직할시에 해당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八道地圖(古4709-23)》의 함경북도 지면에 있는 跋文에서는 이전 시대의 지도들이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도들은 대부분 紙面의 모양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거리나 방위들이 정확하지 못했다.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八道總圖와 道別圖 즉 〈東覽圖〉가 대표적인데 판본의 규격에 맞게 그려졌기 때문에 지도는 남북으로 압축된 형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상기(1678~1752)는 남북으로 압축된 결점들을 극복하여 현재 지도와 거의 유사한 한반도의 윤곽선을 확립하고, 후대 김정호의 《靑邱圖》·《大東輿地圖》와 같은 뛰어난 지도 제작에 기여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처럼 범례를 따로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크기를 달리한 원형으로 郡縣을 표시하고 주요 산지와 하천은 명칭을 표기해 놓고 있다. 그 밖에 烽燧는 촛불모양으로,  驛은 세모 모양의 범례로 표시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후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로 이어지면서 지역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기위해 지도 여백에 註記를 덧붙이고 여러 범례를 사용하는「地圖標」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大同江이 휘감아 도는 平壤은 평안도 관찰사가 파견된 監營이 설치된 곳으로 內城과 北城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동강이란 명칭은 평양성의 東門인 大同門의 명칭과 관련이 있으며, 대동강 본류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대동문 앞쪽 구간만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평양 오른쪽에 있는 세모 모양은 平壤驛으로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되어 11개의 屬驛을 거느린 곳이다. 지도에서 보듯이 鴨綠江 강변에는 수많은 把守와 理山, 碧潼, 昌城, 朔州가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파수는 현재의 국경초소에 해당되며 강을 넘어오는 적군을 방어하며 주로 국경지역에 밀집해 있다. (민경이)

  • 함경남도 (咸鏡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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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를 그대로 모사·수정한 것으로 총 8장의 分圖 중 〈함경남도〉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지도에서는 함경도라 표기되어 있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남도 전체와 량강도 일부, 강원도 일부에 해당된다. 함경북도 지면에 있는 跋文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역이 광활하여 함경도를 북도와 남도로 구분하여 제작한 것이다. 八道地圖(古4709-23) 지도는 대략 1758년에서 17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상기의 《동국지도》 사본 중 초기에 속하는 지도이다. 정상기(1678~1752)의 《동국지도》는 정상기 《동국지도》를 그대로 모사·전사한 河東鄭氏 가문의 原圖 계열과 鄭喆祚, 鄭厚祚로 대표되는 海州鄭氏 가문의 修正本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東國八路分地圖》(성신여대박물관소장) 등의 수정본 동국지도는 원도계열의 지도보다 수록되어 있는 자연적·인문적 정보의 수량이 많고, 지도가 한층 보완·수정되어 조선후기 지도 발달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지도로 평가된다. 지도에서 보듯이 白頭山, 長白山, 鴨綠江, 虛川江 등의 자연적 정보와 크기를 달리하여 원형 모양으로 그려진 郡縣面, 홍색의 도로 등 인문적 정보가 보인다. 이 지도에는 군현의 경계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해주정씨 계열의 수정본 《동국지도》에서 점차 보완·수정된 것을 볼 수 있다. 지도 상단에는 廢四郡 지역 중 古茂昌과 古閭延도 표기 되어 있다. 사군은 세종 때 서북 방면의 여진족을 막기 위해 압록강 상류에 설치하였던 국방상의 요지로서 추후 그 유지가 어려워 철폐되었는데 그 후로 폐사군 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민경이)

  • 함경북도 (咸鏡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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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를 그대로 모사·수정한 것으로 총 8장의 分圖 중 〈함경북도〉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지도에는 함경북도라 圖面 이름은 표기되어 있지 않고 두 번째 도면 함경남도 지도에 함경도라 씌어져 있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북도 전체와 량강도 일부에 해당된다.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도계열 지도들은 鄭尙驥, 鄭恒齡, 鄭元霖, 鄭遂榮 등 4대에 걸쳐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이다. 한반도의 북부지역 윤곽이 크게 왜곡되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전체적인 윤곽선이 정확하고 百里尺이라는 독창적인 축척법을 사용하였다. 지도에서 보듯이 지면에 百里尺과 跋文이 傳寫되어 있고,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나누어 그렸다. 이것은 초기 사본 지도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백리척은 정상기가 창안한 축척법으로 1尺이 百里, 1寸이 十里에 해당된다. 백리척의 전체 길이는 10寸이 되고 5寸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발문에서는 거리와 방위가 정확하지 못한 결함을 지적하면서 지도의 제작경위와 산천의 험준함과 거리의 遠近을 고려한 백리척의 사용, 지방의 크기에 따라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구분하고,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지면에 그린 점, 도별도와 山水, 道路, 烽燧, 驛 등의 彩色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지도에서 가장 눈에 뛰는 것은 白頭山의 모습이다. ‘백두’란 명칭은 정상 부근에 거의 일년 내내 눈이 덮여 하얗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두산 밑에는 현재 ‘天池’라 불리는 大池와 ‘立碑’라 되어있는 白頭山定界碑가 보인다. 백두산정계비는 1712년(숙종 38)에 청과 조선이 합의하에 국경선에 세워진 비로 현재까지도 동쪽 경계가 되는 土門江이 어디인가에 대한 논쟁이 계속 되고 있다.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후대 김정호의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와 비교할 때 전체적인 윤곽선은 그대로 유지되고 좀더 많은 정보가 보완 수정되어 담겨져 있다. (민경이)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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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를 그대로 모사·수정한 것으로 총 8장의 分圖 중 〈황해도〉에 해당하는 지도이다. 현재 북한행정구역상 황해북도, 황해남도에 해당된다. 황해도는 서한만, 대동만, 해주만 등 바다와 접하여 있고, 예성강과 재령강 유역권으로 해안 경관이 뛰어나다. 예성강 물줄기를 따라 白川, 金川, 平山, 新溪, 遂安이 위치하고 있다. 배천은 서울과 의주를 연결하는 義州路가 지나는 교통상의 요지이며 碧瀾渡가 있었다. 벽란도는 예성강 하류에 있는 浦口로 비교적 물이 깊어 선박이 자유로워 중국과 일본, 南洋, 西域지방의 상인들이 드나들었던 교역장이었다. 평산에는 지도에서도 세모모양으로 표시되어 있듯이 황해도에서 비교적 큰 고을로 金郊驛와 麒麟驛 등 역이 2개가 그려져 있다. 長淵은 장산곶으로 널리 알려진 고을인데, 장산곶은 서해안 뱃길 가운데 가장 험한 곳이다. 장산곶에서는 고려 때부터 호남의 변산과 호서의 안면도와 함께 소나무를 가꾸어 궁전을 짓고 배를 건조하는 재목으로 사용했다. 康翎 남쪽에 있는 登山串은 지금의 강령반도에 해당한다. 해주만에 접하여 있는 세모모양은 靑丹驛이다. 청단역은 7개의 屬驛을 거느린 察訪驛이었다. 고을은 계층에 따라 크기가 다른 원형으로 표시하고, 鎭營이 위치한 곳은 사각형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 黃州는 황해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평안도와 접한 고을이다. 한양에서 의주로 가는 大路에 위치한 군사 요충지로 1593년(선조 26)에 兵馬節度使營이 설치된 곳이다. 甕津은 황해도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고을로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수군절도사가 관장하는 水營이 있던 곳이다. (민경이)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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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지도(八道地圖)〈古 4709-23〉 1책 뒷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