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朝鮮地圖] [조선지도]

  • 편저자 : [編者未詳]
  • 청구기호 : 奎25200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1冊(6張),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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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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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地圖 경기도 주기입니다

  • 경기도·충청도(78.0×60.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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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경기도·충청도 필사본이다. 정상기는 발문에서 함경도는 너무 넓어 북도와 남도로 나누어 그리고, 경기도와 충청도는 작기 때문에 합쳐 그린다고 했다. 본 지도첩은 함경도와 경기도 및 충청도를 그린 방법이 정상기의 발문 내용과 동일하다. 발문에서는 경기도의 군현은 오방색의 중앙을 의미하는 純黃으로, 충청남도는 한양의 서남쪽에 있어 서쪽의 純白과 남쪽의 純紅을 합한 紅白으로 한다고 했지만 본 지도에서는 이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 또한 읍성이 있는 군현에는 성곽 모양을 그려넣는다고 했지만 본 지도에는 그런 구분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이를 통해 볼 때 본 지도는 전체적으로는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을 따르고 있지만 표현 방법에서는 필사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본 지도가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을 따르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쉬운 지표는 충청도의 結城 서남쪽에 있는 興陽串이다. 이곳은 본 지도에서 섬으로 표시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串(半島에 대한 조선시대적 표현)이며, 이후의 수정본 계통에서는 모두 사실에 맞게 교정된다. 본 지도는 일반적인 《동국지도》원본 계통과 비교할 때 생략된 지명과 잘못 표시된 것이 많으니 본 사이트의 다른 지도와 비교하면서 보아야 한다. 군사기지인 진보와 찰방역은 모두 붉은색 작은 원으로 표시했는데, 해안의 것은 모두 진보이고 내륙의 것은 모두 찰방역이다. 그러나 진보 중 붉은색이 없이 작은 원만 표시된 것도 있고, 현재 인천공항이 있는 永宗(島)의 영종진을 비롯하여 강화도와 그 주변의 진보가 생략된 경우가 많다. 충청도 瑞山 북쪽의 ‘大山洪’에서 ‘洪’은 洪州의 월경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 홍주의 월경지는 이곳이 아니라 그 동쪽의 新平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이기봉)

  •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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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地圖 뒷면입니다

  • 전도(105.0×57.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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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전도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전도 필사본을 도별도 필사본과 구별하기 위해 《東國大地圖》라 이름 붙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숭실대박물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여러 명칭으로 남아 있다. 이들 전도 필사본은 도별도를 모두 합해 놓은 크기로서 대략 남북으로 250.0cm에 달한다. 본 지도첩의 전도는 크기가 105.0×57.8cm로 작고, 평안도의 압록강 유로나 강원도의 해안선 등에서 도별도의 모습과 다른 편이다. 이를 통해 볼 때 《동국대지도》라 불리는 전도 계통을 축소해서 필사했다기보다는 지도의 제작 기술이 떨어지는 필사자가 도별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제작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함경북도의 동북쪽 두만강 유역 부분은 그려져 있지 않은데,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분명하게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미완으로 끝낸 것이 아닌가 한다. 군현의 색은 도별로 다르게 하여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경기도는 五方色에서 중앙을 의미하는 황색으로 구별했지만 나머지 도의 경우 오방색과 관련이 없는 색으로 표현하여 정상기의 발문 내용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다. 京과 水營 및 兵營은 군현과 다른 색으로 표시하여 구별해 주었지만 감영은 일반 군현과 동일하게 처리하였다. 또한 황해도 황주의 병영이나 경기도 교동의 수영 등 군현의 중심지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수영과 병영은 특별히 구분해 주지 않았다. (이기봉)

  • 전라도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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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地圖 전라도 주기입니다

  • 전라도(76.5×56.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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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전라도 필사본이다. 본 지도가 원본 계통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順天 남쪽의 白也串이다. 이곳에는 원래 白也島와 백야곶 2개가 있었는데, 정상기는 백야곶을 기록에 나오는 백야도보다 훨씬 큰 섬으로 그렸다. 이후의 수정본에서는 백야도를 작게 그리고 백야곶은 呂島 바로 위쪽에 표시하여 사실에 가깝게 수정하였다. 군현과 水營 및 兵營을 모두 동일한 홍갈색으로 표현하여 서로 구별할 수 없게 하였다. 훼손이 심해 알아보기 힘들지만 海南 서쪽에 右水營이, 順天 남쪽에 左水營이, 靈岩 동남쪽에 兵營이 설치되어 있었다. 홍갈색의 작은 원은 鎭堡를 의미하며, 색이 없는 경우도 많아 일관성이 떨어지고 있다. 興德 위쪽에는 黔毛浦(鎭)이 黔毛道로 잘못 표시되어 있는데,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을 ○○道로 부르기 때문에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木浦 위쪽의 三鄕 오른쪽에 羅州의 월경지 표시인 ‘羅’의 글자가 보이고 있다. 咸平 위쪽의 海倉은 대동법 시행 이후 많은 고을의 조세를 모아 운반하던 漕倉制가 약화되면서 각 고을마다 운반을 책임지게 했던 창고다. 운송이 가능한 바다나 강을 끼고 있는 모든 고을에 해창이 있었으며, 수로 운송이 불가능한 내륙의 고을만 옥구의 群山倉과 함열의 聖堂倉 및 영광의 法聲倉에 설치되어 있던 漕倉을 경유하여 조세를 운반하였다. 좀이 많이 먹어 알아보기 힘들지만 지도 자체가 상당히 거칠게 그려졌고, 지명이나 기호의 표시에서 일관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이 지도만으로는 필사 당시라고 하더라도 실제 정보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에 다음 장에 있는 전라도의 주기는 상당히 자세하게 정보를 정리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좀이 먹기는 했지만 글씨체가 정연하고, 군현의 한양으로부터의 거리와 古號 및 명산대천이 자세하다. 거리가 적혀 있지 않은 경우는 바로 앞쪽의 군현과 동일한 거리임을 의미한다. 왼쪽에는 찰방역(郵)과 鎭·堡가 자세하게 적혀 있어 지도의 소략함을 보충할 수 있다. (이기봉)

  • 충청도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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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地圖 충청도 주기입니다

  • 평안도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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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地圖 평안도 주기입니다

  • 평안도(96.5×6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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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평안도 필사본이다. 본 지도가 원본 계통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현재의 중강진 부근인 가장 북쪽의 압록강 유로다. 이 부분은 수정본에서 원본 계통과 전혀 다르게 그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정본 계통 사이에도 모두 다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과 몇몇 수정본 계통을 비교 확인하고 싶다면 바로 이 부분을 기준으로 삼아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정상기의 발문에는 평안도의 동북쪽 땅이 너무 넓어 古茂昌과 廢厚州의 땅을 함경남도의 삼수 서쪽에 붙여 그린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본 지도는 발문의 내용과 동일하게 되어 있다. 1776년(영조 52)에 압록강변의 理山이 楚山으로 개명되는데, 본 지도에는 개명 이후의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어 빨라도 1776년 이후에 필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군사기지인 鎭堡와 察訪驛은 적황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여 구분을 어렵게 했는데, 平壤 남쪽의 大同(驛)과 寧邊 동쪽의 魚川(驛)만 찰방역이다. 그러나 대동역이 대동강 위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쪽으로 표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진보의 표시에서 적황색이 칠해져 있지 않은 것도 있고, 安州 서쪽의 老江鎭은 명칭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본 지도만으로는 필사 당시의 정보조차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지도와 비교하면서 살펴보아야 한다. 반면에 다음 쪽의 주기에는 찰방역(郵)과 鎭·堡가 자세하게 적혀 있어 지도의 소략함을 보충할 수 있다. 지도 북쪽에는 세종 때 개척되어 고을이 설치되었다가 세조 때까지 모두 혁파되어 ‘廢四郡’으로 불렸던 古虞芮와 古慈城 및 古閭延이란 지명이 적혀 있다. 고을을 혁파했다는 의미는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백성이 사는 것을 금지했다는 의미이며, 이곳에 고을이 다시 설치되는 것은 1800년대 이후다. (이기봉)

  •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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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地圖 표지입니다

  • 함경남도(94.5×5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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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함경남도 필사본이다. 1787년(정조 11)에 長津鎭이 가운데 왼쪽의 別害鎭으로 옮겨 長津府로 승격되는데, 본 지도에는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1800년(정조 24)에 利原으로 변경되는 利城은 개정 이전의 명칭으로 적혀 있다. 본 지도의 모습은 평안도의 동북쪽 땅이 너무 넓어 古閭延과 廢厚州의 땅을 함경남도의 삼수 서쪽에 붙여 그린다고 언급한 정상기의 발문 내용과 동일하게 되어 있다. 이외에도 물줄기와 산줄기 및 지명의 종류와 위치는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과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표현 방식에서는 정상기의 발문 내용과 다른 것이 대부분이다. 첫째, 함경도는 한양의 북쪽에 있어 군현을 흑색으로 칠해 구분해 준다고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황색으로 되어 있다. 둘째, 읍성이 있는 군현은 성곽 표시를 해준다고 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는 읍성의 유무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셋째, 군사기지인 鎭堡와 察訪驛은 보통 청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지만 본 지도에는 홍색의 작은 원으로 되어 있으며, 일부는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다. 監營이 있던 함흥과 南兵營이 있던 北靑도 일반 군현과 동일하게 표현하여 구별할 수 없게 하였으며, 하천의 표시에서는 연결관계나 상류와 하류의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본 사이트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과 비교하면서 본 지도를 이해하면 이러한 문제점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기봉)

  • 함경도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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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地圖 함경도 주기입니다

  • 함경북도(79.0×6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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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함경북도 필사본이다. 군현은 황색의 큰 원으로 표시하였다. 북쪽 會寧 근처에 적색으로 표시된 行(營)은 경성에 설치된 北兵營이 겨울 동안 주둔하던 곳이다. 군사기지인 鎭堡와 察訪驛은 적색의 작은 원으로 표현되어 구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富寧 오른쪽 방향에 2개의 적색 작은 원이 찰방역인데, (輸城)道와 懷(緩驛)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지나 지도에서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屬驛을 관장하던 역을 ○○道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수성역에 찰방이 파견되었기 때문에 수성도라 했지만 조선후기에 회완역으로 옮겨졌다. 본 지도의 필사자는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성도와 회완역 모두를 찰방역으로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진보의 표시에서 필사자가 자료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거칠게 필사했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사례가 여럿 나타나고 있다. 북쪽의 두만강가에는 黃拓坡(堡)의 명칭이 2개나 적혀 있으며, 穩城 왼쪽에는 진보 표시만 있고 명칭은 적혀 있지 않다. 황척파보는 북쪽의 것이 맞으며, 온성 왼쪽의 진보는 柔遠鎭이다. 백두산 아래쪽에 진보처럼 표시된 三池는 3개의 큰 호수인데, 필사자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밖에도 회령 남쪽의 古豊山·廢茂山 등 진보가 설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의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백두산 바로 아래쪽의 分水嶺은 1712년(숙종 38)에 청나라와의 사이에 국경선을 확정하며 세운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졌던 곳이다. 좀이 먹어 대부분의 글자가 사라졌지만 분수령 바로 오른쪽에는 정계비를 세웠다는 立碑의 ‘立’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인터넷이나 여러 자료에서 ‘山自分水嶺...’이란 문구를 ‘산은 스스로 물을 나누는 고개다’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문구에서의 분수령이 바로 백두산 바로 아랫쪽의 분수령으로 ‘산은 분수령으로부터...’라고 해석해야 올바르다. (이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