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朝鮮地圖 조선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奎16030-v.1-7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7帖,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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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56개 고을을 제외한 함경도(23장)·평안도(42장)·강원도(27장)·황해도(23장)·경기도(33장)·충청도(54장)·경상도(71장)의 고을이 순서대로 1책에서 7책으로 묶여있는 지도책이다. 2책의 평안도 부분에는 廢四郡 지역이 강계 지도에 함께 그려져 있고, 강원도에는 일반 군현 이외에 울릉도가 포함되어 있다. 5책의 경기도 지도에는 漣川·加平·楊州·抱川·永平 등 5개 고을이 누락되어 있다. 3책의 강원도와 7책의 경상도 목차 부분에 ‘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보관하며 사용하던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지도는 4.2cm의 方案 위에 그려져 있다. 이 방안은 縮尺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모든 고을이 동일한 축척 아래 그려져 있는 보기 드문 지도책이다. 따라서 지도에 표현된 고을의 크기는 실재의 면적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을의 모양이나 지리 정보의 위치 역시 전통적인 지도책에서는 가장 정확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책이기도 하다. 지리 정보의 정확성만을 목표로 한 지도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군현지도에서 나타나는 註記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지도책의 세로-가로 크기는 50cm-38cm 정도이다. 대부분의 고을은 이 크기 안에 그려 넣었으며,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만 더 큰 종위 위에 그렸다. 1책의 함경도에서는 함흥·온성이 71.5cm-77cm, 영흥·안변·명천이 50cm-76cm, 경성·삼수가 62.5cm-77cm, 갑산이 78cm-94cm, 무산이 74.5cm-77.5cm이다. 2책의 평안도에서는 평양·희천·영변·의주·삭주·창성·영원이 50cm-76cm이고, 강계는 폐사군을 포함하기 때문에 77.5cm-117.5cm로 이 지도책에서 가장 크다. 3책의 강원도에서는 50cm-76cm인 것이 원주·홍천·춘천·이천·회양·강릉·울릉도의 지도이다. 이 밖에 제6책의 충청도에서는 청주·충주·홍주만이, 제7책의 경상도에서는 안동만이 50cm-76cm이다. 지도의 표현 양식은 모든 지도가 동일하기 때문에 중앙에서 한 사람이 일률적인 방식으로 편집하여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정보는 동일한 기호로 표시하는 범례도 고을의 읍치와 감영·병영·수영,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 군사시설인 鎭堡와 烽燧, 稅穀의 저장과 운반을 위한 倉庫 등의 7개 부분에서 모든 지도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일반 고을의 邑治는 붉은색의 큰 동그라미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는 검은색 테두리의 원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각 고을의 監營은 붉은색의 정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에는 성곽 모양을 표시하였다. 兵營과 水營은 파란색 사각형으로 표시하였으며, 성곽이 있는 경우에는 파란색 테두리의 사각형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종6품의 察訪이 파견된 찰방역의 경우는 붉은색의 작은 동그라미로 표시하여, 고을의 읍치와 구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군사시설인 鎭堡는 푸른 색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통일하였으며, 倉庫는 건물 모양으로, 烽燧는 불이 펴져 있는 봉수 모양으로 표시하였다. 이러한 범례의 표시는 당시에 통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밖에 坊面社와 驛은 전국 공통으로 표시되는 정보였으며, 그 밖의 정보는 지도 또는 道마다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지도책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지도에는 정확성보다는 관념적인 측면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회화식 표현이 주를 이루었고, 지지 자료에도 각종 정보의 거리나 위치 정보가 상당히 애매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 지도책은 그러한 자료를 최대한 활용한 것 같으며, 한 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토론에 의해 위치나 거리 등이 확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때로는 하나의 위치를 잘못 비정함으로써 다른 위치 정보 역시 왜곡되는 경우가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6책 충청도의 충주·해미 지도와 제3책 강원도의 횡성 지도 등이 있다. 이 이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그런 왜곡이 보이고 있는데, 각 지도의 해제에서 그런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 지도의 제작시기에 대해서는 지도책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지도에 표현된 지리 정보의 연도를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지리정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평안도 곽산의 邑治가 영조 22년(1746)과 44년(1768) 사이에 있었던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2. 평안도 철산의 邑治가 영조 27년(1571)과 영조 45년(1769) 사이에 있었던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3. 평안도 영원의 읍치가 영조 25년(1749) 이후의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4. 평안도 위원의 읍치가 영조 19년(1743) 이후의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5. 함경도 회령에 영조 21년(1745)에 혁파된 胡打里堡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6. 경기도 마전에 영조 26년(1750)에 세워진 眉江書院이 표시되어 있다. 7. 경기도 양근의 읍치가 영조 23년(1747) 이후의 위치에 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은 자료를 종합해 보면 이 지도책은 1750에서 1768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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