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폭 병풍의 삼베 위에 그려진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지도로 색이 많이 바래고 글씨가 희미해져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제1폭에 그려져 있는 전도는 8도를 나누어서 그린 필사본에는 없는 것으로 모두 이어 붙여 그린 후 축소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의 동한만 부분에 약 3.7cm의 百里尺이 그려져 있는데, 함경북도에 그려진 백리척이 약 9.8cm이므로 도별로 나누어진 원도의 약 38%로 축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상기의 발문이 10폭에 앞뒤의 일부가 잘린 채 도별 호구·전답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다른 지도도 좌우 일부가 잘린 경우가 대부분인데, 기존의 병풍을 새로 표구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한다. 면적이 넓은 함경도를 북도와 남도로 나누고, 면적이 적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하나에 그리며, 평안도 동북쪽을 함경남도에 그린 것은 정상기의 발문 내용과 일치한다. 수록된 지명의 변천을 통해 제작연대를 추정하면 다음과 같다. 1767년(영조 43)년 산청과 안의로 개명되는 산음과 안음, 1776년(영조 52)에 니성과 초산으로 개명되는 충청도의 니산과 평안도의 이산이 모두 개명 이전의 명칭으로 표시되어 있다. 1753년(영조 29)에 옮겨가는 황해도 金川郡의 읍치가 옮긴 이후의 자리에 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1753년과 1767년 사이에 제작된 지도를 원본으로 필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1757년(영조 33) 정항령의 집에 소장되어 있던 《東國地圖》가 洪良漢에 의해 영조에게 보고되고, 홍문관에 한본 모사해 두라는 명령을 듣는다. 본 지도가 이때 모사된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으나 삼베에 정교하게 그려져 병풍의 형태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통해 볼 때 궁에서 특별 제작되어 사용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이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