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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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朝鮮八道地圖 조선팔도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奎12419
  • 간행연도 : [18世紀(英正祖 年間:1724-1800)]
  • 책권수 : 1帖(5折 10面), 彩色屛風
  • 판본사항 : 木版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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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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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강원도 지도로 10폭 중 5폭에 그려져 있다. 강원도의 군현을 청색으로 한 점, 읍성이 있는 군현은 성곽 모양을 그려넣은 점 등은 정상기의 발문에 있는 내용을 잘 따르고 있다. 그러나 양구와 춘천에는 읍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곽 표시를 해놓아 오류를 범하고 있다.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된 찰방역과 군사기지인 진보의 표시에서도 일정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강원도에는 金化의 生昌, 원주의 保安, 양양의 祥雲, 삼척의 平陵 등 4개의 찰방역이 있었는데, 보안역과 상운역에는 청색 작은 원의 찰방역 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또한 강원도에는 삼척의 三陟浦鎭(鎭營)과 평해의 越松浦鎭 2개가 있었는데, 청색 작은 사각형의 진보 표시가 삼척포진에만 표시되어 있다. 붉은색의 도로 변에 금성의 昌道, 인제의 馬雙, 원주의 新林 등 종류를 알기 어려운 지명이 많이 적혀 있는데 대부분 驛의 명칭이다. 삼척의 동해 바다 가까이에 울릉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 남쪽에는 ‘울진으로부터 바람을 얻어 2일이면 도착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면이 좁아 울릉도를 육지 가까이에 붙이고 지지적인 서술로서 대략적인 위치를 보완한 것이다. 원본 계통에 일반적으로 표시되는 울릉도 동쪽의 于山島 표시가 없다. 동해안에는 三日浦와 烈山湖 등 많은 호수가 표시되어 있는데, 홍수 때 백두대간 동쪽의 급경사를 타고 내려온 퇴적물이 만의 입구를 막아 생긴 석호이다. 다른 부분과 동일한 축척을 적용하면 점 정도로 표시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보다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지리지나 그림식(繪畵式) 지도에서 이런 호수들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기봉)

  • 경기도·충청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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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경기도·충청도 지도로 10폭 중 7폭에 그려져 있다. 동서로 좁은 폭의 면에 지도를 그렸기 때문에 서해의 섬 일부가 잘려 있으며, 원본 계통의 다른 필사본에서 바다 쪽으로 훨씬 멀게 그려져 있던 섬들을 육지에 가깝게 그렸다. 1776년(영조 52)에 尼城으로 개명되는 尼山이 개명되기 이전의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 이후의 지명 변화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서해에는 漕運路가 붉은선으로 그려져 있는데, 현재의 안면도 남쪽을 지나고 있다. 안면도 남쪽은 풍랑이 심해 조운선의 난파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1578년과 1713년 사이에 현재의 안면도와 태안군 남면 사이를 뚫어 조운선이 지나가도록 했다. 그러나 본 지도에는 안면도가 섬이 아닌 곶(즉 반도)으로 그려져 있어 이런 사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조선후기의 지도 대부분이 안면도를 섬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안면도가 곶으로 기록된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의 조선전기 기록을 신뢰하여 그린 것으로 판단된다. 안면도 오른쪽에는 興陽串이 섬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현재의 보령시 천북면으로 실제로는 곶이다. 조선시대에는 結城의 땅을 넘어가 있는 홍주의 월경지였기 때문에 지도에는 ‘洪’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홍주의 월경지이면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흥양곶이 목장이었다는 기록에 입각하여 섬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기봉)

  • 경상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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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경상도 지도로 10폭 중 8폭에 그려져 있다. 1767년(영조 43)에 안의와 산청으로 개명되는 안음과 산음이 개명되기 이전의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다. 읍성이 있는 읍치에 성곽 모양을 정확히 그리는 등 발문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어 원본에 가까운 것을 필사했다고 판단된다. 지도 위에는 安·尙·晋 등 한 글자로 쓰여진 것이 여러 개 나오는데, 각각 안동·상주·진주 등의 越境地나 犬牙相入地를 의미한다. 푸른색 작은 원의 기호가 해안가와 내륙에 모두 나타나고 있는데, 앞의 것은 군사기지인 鎭堡인 반면 뒤의 것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관장하던 察訪驛이다. 그러나 읍성이 없었던 仁同에 성곽 표시가 있거나 읍성이 있었던 密陽과 東萊에 성곽 표시가 없는 등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지도 아래쪽에는 동쪽의 울산으로부터 서쪽의 하동까지 해안선을 끼고 있는 15개의 고을이 적혀 있다. 이 중 13개에는 전선이 있는 읍(有戰船邑)이라는 표시가 있고, 漆原과 東萊에는 ‘無戰船’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전선이 배치되어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왼쪽에는 이상의 15개 읍에는 堂上官(정3품 이상)이 파견되든 堂下官(종3품 이하)이 파견되든 임기(瓜限)가 20개월이라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주기는 다른 도의 지도에는 없는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 중요해진 경상도 해안 방어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이기봉)

  • 발문(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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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폭 중 10폭에 있는 것으로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 수록된 발문이 위쪽에, 도별 호구와 전답의 수가 아래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상기의 발문은 앞쪽과 뒤쪽이 잘린 채 수록되어 있는데, 이런 현상은 1폭의 전도, 4폭의 평안도, 7폭의 경기도·충청도 지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래부터 이렇게 제작되었다기보다는 후대에 병풍을 수리하면서 변형된 것으로 판단된다. 발문 중 앞쪽에 생략된 것은 ‘我國地圖之行於世者 不知其數 而無論其模圖印圖 皆從紙面之方圓濶狹爲之’이고, 뒤쪽에 생략된 것은 ‘(營)重圈而黃中 營邑之有城 外施白線 各鎭靑 各驛紅 而皆作小圈 此皆作圖之凡例 至若各道分域處有嶺脊江水 不得不重模而疊寫 亦固然之勢 或有欲合模者 能知其模一而去一 則可不失全形矣’이다. 호구와 전답의 수를 기록한 아래쪽도 앞쪽이 일부 잘린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도에 모두 수록된 전답이 아니라 인구에서 끝나는 것을 통해 볼 때 한성부의 통계가 아닌가 한다. 인구 통계만을 정리해 보면 한성부 197,452구, 경기도 649,759구, 충청도 941,117구, 전라도 1,114,955구, 경상도 1,640,596구, 황해도 545,531구, 평안도 1,275,275구, 강원도 370,533구, 함경도 517,728구로 모두 합하면 7,252,946구다.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에서는 발문이 함경북도의 동해안에 수록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호구와 전답을 기록한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본 지도는 전국적인 통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호구와 전답의 수를 필요에 따라 새롭게 추가하면서 발문을 함께 수록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기봉)

  • 전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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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지도로 10폭 중 1폭에 그려져 있는 전도이다. 원본 계통을 그대로 필사한 것이 아니라 8도를 축소하여 그린 것으로 현재의 동한만 부분에 약 3.7cm의 百里尺이 그려져 있으며, 왼쪽 위의 압록강 하류가 일부 잘린 채 표구되어 있다. 훼손이 심하여 알아보기 힘든 글씨가 많지만 1767년(영조 43)에 안의로 개명되는 안음, 1776년(영조 52)에 초산으로 개명되는 이산이 모두 개명되기 이전의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어 뒤쪽의 도별도와 제작시기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지도가 비록 많이 훼손되었지만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임을 한눈에 구별할 수 있는 부분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운데 위쪽에 서북쪽으로 흐르다 서남쪽으로 꺾이는 부분의 압록강 유로 모습이 이후의 수정본 계통이나 김정호의 《청구도》·《동여도》·《대동여지도》 등과 확연히 다르다. 둘째, 전라도 순천 남쪽에 섬으로 표시된 백야곶이 이후의 수정본 계통과 김정호의 지도들에서는 串이라는 한자의 뜻에 걸맞게 반도로 표현되고 백야도는 훨씬 작은 섬으로 그려진다. 정상기의 발문에는 군현을 채색할 때 경기는 純黃(중심)으로, 충청도는 紅白(남서)으로, 전라도는 純紅(남)으로, 경상도는 靑紅(동남)으로, 황해도는 純白(서)으로, 강원도는 純靑(동)으로, 평안도는 白黑(서북)으로, 함경도는 純黑(북)으로 하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본 지도에는 모든 군현을 純紅으로 채색하여 발문의 내용을 따르고 있지 않다. (이기봉)

  • 전라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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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전라도 지도로 10폭 중 9폭에 그려져 있다. 기존의 연구에서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임을 알져주는 지표로 언급된 것 중에 제주도 남쪽의 灣과 현재의 여수인 左水營 서쪽의 白也串이 있다. 제주도 남쪽에는 본 지도처럼 만으로 표시될 수 있는 곳이 없는데, 이후의 수정본 계통에서는 이 부분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된다. 그리고 순천의 지리지나 지도에는 백야곶과 백야도 2개의 기록이 있는데, 본 지도에는 백야곶이 마치 섬처럼 그려져 있다. 백야도는 현재의 여수시 화정면의 면소재지인 백야도라는 작은 섬이고, 백야곶은 여수시 화양면으로 ‘串’(현재의 ‘半島’에 대한 조선시대의 표현)에 가까운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후의 수정본 계통에서는 백야도와 백야곶이 모두 표시되어 사실에 가깝게 교정된다. 한양을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전라도는 五方色 중 남쪽에 해당되는 붉은색으로 군현을 표시한다는 발문의 내용이 있는데, 본 지도는 그것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해안가의 鎭堡와 내륙의 察訪驛을 모두 청색 작은 원으로 표시하여 일반적인 원본 계통의 필사본과 동일하게 표현하였다. 다만 순창과 남원에 있는 찰방역인 獒樹(驛)을 홍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는 등의 오류도 보이고 있다. 서남쪽의 해안가와 섬에는 ‘灵’과 ‘羅’ 등의 글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灵光’과 ‘羅州’의 월경지임을 의미한다. 동일하게 남해안의 섬에 있는 ‘灵’과 ‘長’ 및 ‘康’은 각각 ‘灵巖’과 ‘長興’ 및 ‘康津’의 월경지다. 서쪽 바다의 黑山(흑산도)·紅衣(홍도)·可佳(소흑산도)와 남쪽 바다의 제주도는 실제보다 육지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 병풍의 크기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각각 水路의 거리를 적어놓아 앞의 단점을 보완해 주고 있다. (이기봉)

  • 평안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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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평안도 지도로 10폭 중 4폭에 그려져 있다. 오른쪽 위의 압록강 중류와 가운데 왼쪽의 압록강 하구쪽이 잘린 채 표구되어 있으며, 원본 계통에 일반적으로 적혀 있는 압록강 건너편의 많은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이외의 지명이나 기호 표시 및 전체적인 흐름은 정상기의 원본 계통 지도와 거의 동일하다. 정상기의 발문에는 평안도의 동북쪽 모퉁이가 광활하여 古茂昌 廢厚州 등의 땅을 함경남도에 붙인다고 되어 있는데, 본 지도도 그 내용과 일치하게 그려져 있다. 1776년(영조 52)에 楚山으로 개명되는 理山이 개명되기 이전의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어 그 이전의 지도를 필사했음을 알 수 있는 지도다. 본 지도에서 군현 이외에 가장 자세한 것은 군사기지인 鎭堡, 사람과 정보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는 도로·봉수·찰방역이다. 진보와 찰방역은 모두 푸른색 작은 원으로 되어 있어 구별이 어렵다. 平壤의 大同과 영변의 魚川이 찰방역이고, 鐵山의 車輦은 찰방역은 아니지만 중요한 사신로 위의 역이며, 나머지는 모두 진보다. 진보는 압록강변에 가장 빼곡히 표시되어 있어 최전방임을 실감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적유령산맥인 청천간 북쪽의 청북정맥 안팎에도 상당수가 배치되어 있어 제2의 저지선임을 알 수 있다. 기타 북쪽의 강계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통로에도 진보가 많이 보이고,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이어진 통로에는 진보와 함께 대형산성이 줄을 잇고 있어 대규모 적의 가장 중요한 이동로였음을 알 수 있다. (이기봉)

  • 함경남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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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함경남도 지도로 10폭 중 3폭에 그려져 있다. 정상기의 발문에는 평안도의 동북쪽 모퉁이가 광활하여 古茂昌 廢厚州 등의 땅을 함경남도에 붙인다고 되어 있다. 본 지도의 왼쪽 위에 古茂昌 古厚州鎭이 표시되어 있고 그 아래쪽에는 평안도의 江界境이란 문자도 보여 원본 계통을 충실하게 필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원본 계통의 필사본에서 압록강 건너편에 많은 지명이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본 지도에는 모두 생략되어 있는 차이가 있다. 함경도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만주와 직접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면적이 넓기 때문에 병영을 북병영과 남병영 2개로 나누었다.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백두대간(현재의 마천령산맥)을 기준으로 동북쪽과 서남쪽을 각각 북병영과 남병영의 관할로 하였는데, 남병영은 본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北靑에 설치되어 있었다. 1785년(정조 9)에 장진진으로, 1787년(정조 11)에 장진부로 승격되는 장진이 지도 가운데 왼쪽에 長津柵으로 표시되어 있다. 장진책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쪽의 압록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 현재의 장진강인데, 1822년(순조 22)에 古厚州鎭 부근에 厚州府가 공식적으로 설치되기까지 최전방의 방어선 역할을 하였다. 본 지도에도 장진강이 압록강에 합류되기까지 군사기지인 진보를 의미하는 파란색 원이 長津柵에서 旧乫坡知(堡)까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기봉)

  • 함경북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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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함경북도 지도로 10폭 중 2폭에 그려져 있다. 원본 계통의 일반적인 필사본에는 함경북도의 동해 여백에 100리척과 발문이 적혀 있지만 본 병풍에는 발문을 10폭에 따로 수록했기 때문에 100리척만 9.8cm의 크기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두만강 건너편에 많은 지명이 적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본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이외의 내용은 정상기의 발문이나 원본 계통의 일반적인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함경도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만주와 직접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면적이 넓기 때문에 병영을 북병영과 남병영 2개로 나누었다. 백두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백두대간(현재의 마천령산맥)을 기준으로 동북쪽과 서남쪽을 각각 북병영과 남병영의 관할로 하였는데, 정상기도 동일한 기준으로 북도와 남도를 나누어 그렸다. 북병영은 경성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강이 얼어 붙는 겨울에는 본 지도의 회령 동쪽에 표시된 北行營에 병마사가 주둔하며 국경 방어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백두산이 현재 천지라 불리는 大池와 함께 강조되어 있고, 그 아래쪽에는 1712년(숙종 38)에 청과 조선 사이의 국경 확정 내용을 새겨넣은 백두산정계비가 立碑라는 문자로 표현되어 있다. 백두산정계비에 동쪽 경계를 토문강으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본 지도에는 흐릿하지만 백두산 동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향한 물줄기 위에 ‘土門江源’이라 적혀 있다. (이기봉)

  • 황해도(102.0×5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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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기의 《동국지도》원본 계통의 필사본 황해도 지도로 10폭 중 6폭에 그려져 있다. 정상기의 발문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읍성이 있는 군현에 성곽 표시를 분명히 하여 읍성이 없는 군현과 구별하였고, 진보와 찰방역은 동일하게 청색의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長山串 서남쪽의 白翎(島)가 원본 계통의 다른 필사본에는 일반적으로 정 서쪽에 가깝게 표시되어 있다. 백령도의 실제 위치는 장산곶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본 지도가 사실에 더 가깝다. 하지만 다른 자료를 통해 교정했다기보다 동서의 폭이 좁은 면에 지도를 그리면서 백령도가 서남쪽으로 옮겨진 것으로 판단된다. 瓮津에 ‘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1719년(숙종 45)에 왼쪽의 所江(鎭)을 승격시켜 水營으로 삼아 옹진도호부사가 수군절도사를 겸하게 했기 때문이다. 所江에 行營이라 적혀 있는 것은 수군절도사를 겸한 옹진도호부사가 옹진 읍치와 소강을 번갈아 가면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원본 계통의 필사본 중 옹진 읍치와 소강을 모두 군현의 기호 표시로 한 경우가 많은데, 본 지도는 읍치와 행영을 각각 군현 표시인 원과 사각형으로 분명하게 구별해 주었다. 감영이 설치되어 있던 해주에는 ‘監’이, 병영이 설치되어 있던 황주에는 ‘兵’이 기록되어 있다. (이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