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유형별, 지역별로 분류하여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지도

左海地圖 좌해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奎12229
  • 간행연도 : [18世紀 後半(正祖 年間:1776-1800)]
  • 책권수 : 1冊(7張),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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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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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강원도〉부분이다. 현재 북한행정구역상 강원도 일부, 남한행정구역상 강원도, 경기도, 경상북도, 충청북도 일부가 포함된다. 《좌해지도(규1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이다. 지도에 보이는 하천은 북한강으로 춘천에서 소양강으로 분기된다. 그 외 원주와 횡성을 지나는 하천은 남한강의 지류이며, 영월을 휘감아 흐르는 하천은 달천강의 지류이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경계로 동부와 서부로 나눌 수 있다. 지도에서 보듯이 黃龍山-毘盧峯-金剛山-雪岳山 등으로 이어진 산계가 태백산맥이다. 강원도 지도에는 산지와 고개, 하천과 호수와 관련된 지명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산지는 ‘峯’, ‘岩’, ‘岳’, ‘丘’, ‘臺’, ‘窟’, ‘德’ 등으로, 고개는 ‘嶺’, ‘峴’, ‘峙’, ‘古介’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태백산맥을 이루는 산지는 ‘령’, ‘현’, ‘치’ 등 대부분 고개를 나타낸다. 조선후기 일종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才物譜』에 의하면 ‘령’은 산의 목과 어깨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길로 통할 수 있는 곳이고, ‘현’은 령 위의 평평한 곳, ‘치’는 산이 우뚝 솟은 모양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지명이 각각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령’은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지형이 산지가 많은 산악 국가인 점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동해안에는 북쪽으로부터 廣湖, 영랑호, 청초호 등의 해안가 호수가 잘 그려져 있다. 서쪽의 급경사에서 홍수 때 공급된 토사가 조수간만의 차가 거의 없는 동해와 만나면서 하구나 만의 입구를 막아 형성된 석호들이다. (민경이)

  • 경기도·충청도 주기 (京畿道·忠淸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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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경기도·충청도〉에 해당되는 分圖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북한과의 군사분계선 근처에 있는 황해북도의 개성시, 장단군, 연천군, 남한의 경기도와 충청도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로 특히 鄭允容의 서문이 소재되어 있는 지도이다.  보관상태는 다른 사본 지도보다 손상이 심하지만 김정호의 《靑邱圖》·《大東輿地圖》로 이어지는 중요한 지도로 평가된다. 산과 하천은 얽기고 설겨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표현되어 있다. 산계의 표현 방식은 김정호 《대동여지도》의 표현 양식과 유사하다. 각 군현은 원형 안에 지명이 씌어져 있고 각 고을의 크기에 따라 덧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지도에 담고 있는 정보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정상기의 〈동국지도〉 사본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23)》, 《八道地圖〉(奎10331)》와 거의 같다. 郡縣의 지명을 원형 안에 쓰거나 원형 주변 여백에 기록하는 등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를 뿐 산지와 하천, 鎭營, 창고, 도로의 정보가 같다. 지명으로 제작시기를 추정하면 즉 함경도의 長津府가 설치된 1787년 이후이고 지도에도 보이듯이 경기도 喬桐의 統禦營(水營)을 강화로 옮겨진 1779년 이전, 衿川이 詩興으로 바뀌는 1795년 이전의 지도이다. 지도에서 보듯이 경기도는 서해의 경기만에 면해 있다. 경기만은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고 섬이 많다. 아산만, 남양만은 경기만의 2차적인 만들이고, 강화도·영종도·대부도 등은 경기만의 큰 섬들이다. 경기만은 조차가 크고 해안선이 복잡하며 한강·임진강·안성천 등이 많은 토사를 유출하여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대부도의 始華防潮堤처럼 주거용지·공장부지 등으로 개발·이용 된다.  (민경이)

  • 경기도·충청도 주기 (京畿道·忠淸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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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경기도·충청도〉에 해당되는 分圖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북한과의 군사분계선 근처에 있는 황해북도의 개성시, 장단군, 연천군, 남한의 경기도와 충청도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로 특히 鄭允容의 서문이 소재되어 있는 지도이다.  보관상태는 다른 사본 지도보다 손상이 심하지만 김정호의 《靑邱圖》·《大東輿地圖》로 이어지는 중요한 지도로 평가된다. 산과 하천은 얽기고 설겨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표현되어 있다. 산계의 표현 방식은 김정호 《대동여지도》의 표현 양식과 유사하다. 각 군현은 원형 안에 지명이 씌어져 있고 각 고을의 크기에 따라 덧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지도에 담고 있는 정보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정상기의 〈동국지도〉 사본 지도인 《八道地圖(古4709-23)》, 《八道地圖〉(奎10331)》와 거의 같다. 郡縣의 지명을 원형 안에 쓰거나 원형 주변 여백에 기록하는 등 표현 양식이 약간 다를 뿐 산지와 하천, 鎭營, 창고, 도로의 정보가 같다. 지명으로 제작시기를 추정하면 즉 함경도의 長津府가 설치된 1787년 이후이고 지도에도 보이듯이 경기도 喬桐의 統禦營(水營)을 강화로 옮겨진 1779년 이전, 衿川이 詩興으로 바뀌는 1795년 이전의 지도이다. 지도에서 보듯이 경기도는 서해의 경기만에 면해 있다. 경기만은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고 섬이 많다. 아산만, 남양만은 경기만의 2차적인 만들이고, 강화도·영종도·대부도 등은 경기만의 큰 섬들이다. 경기만은 조차가 크고 해안선이 복잡하며 한강·임진강·안성천 등이 많은 토사를 유출하여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대부도의 始華防潮堤처럼 주거용지·공장부지 등으로 개발·이용 된다.  (민경이)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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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경상도〉부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이다.  보관상태는 다른 사본 지도보다 손상이 심하지만 鄭允容의 서문이 소재되어 있는 귀중한 지도이다. 경상도는 소맥산맥을 경계로 전라도와 구분되고 낙동강과 그 지류인 琴湖江을 경계로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나누어진다. 지도에서 보듯이 소맥산맥은 鳥嶺, 俗離山, 黃岳 등 山, 岳, 峴, 峙로 이어져 있다. 지도에는 금오산성과 독용산성이 뚜렷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폐허 상태로 있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축조된 대형 산성에 해당된다. 대규모의 적이 쳐들어왔을 때 인근 몇 개 고을이 들어가 장기적인 항쟁을 하기 위해 축조된 산성이다. 1758년(영조 34)에 축성된 금오산성 이외에 지도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서를 지도에서 발견 할 수 있다. 山淸은 본래 신라의 知品川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山陰으로 고치고 1767년(영조 43)에 지금 이름인 산청으로 고쳤다. 安義는 본래 신라의 馬利縣인데 경덕왕 때 利安縣이라 고치고 공양왕 때 본래 신라 南內縣인 咸陰에 이속시켰다. 조선 태종 때 安陰이라 고치고 1767년(영조 43)에 지금 이름인 안의가 되었다. 따라서 이 지도는 1767년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지도의 제작 시기 추정에 있어 이와 같은 지명의 변천 뿐만아니라 山, 江 등의 자연적 요소의 표현과 도로, 鎭堡, 驛站, 山城, 陵園 등의 인문적 요소 그리고 지도 여백에 씌여진 註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제작시기를 추정해야 한다. (민경이)

  • 경상도 주기 (慶尙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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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경상도〉부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이다.  보관상태는 다른 사본 지도보다 손상이 심하지만 鄭允容의 서문이 소재되어 있는 귀중한 지도이다. 경상도는 소맥산맥을 경계로 전라도와 구분되고 낙동강과 그 지류인 琴湖江을 경계로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나누어진다. 지도에서 보듯이 소맥산맥은 鳥嶺, 俗離山, 黃岳 등 山, 岳, 峴, 峙로 이어져 있다. 지도에는 금오산성과 독용산성이 뚜렷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전기까지만 해도 폐허 상태로 있다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축조된 대형 산성에 해당된다. 대규모의 적이 쳐들어왔을 때 인근 몇 개 고을이 들어가 장기적인 항쟁을 하기 위해 축조된 산성이다. 1758년(영조 34)에 축성된 금오산성 이외에 지도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단서를 지도에서 발견 할 수 있다. 山淸은 본래 신라의 知品川縣이었는데 경덕왕 때 山陰으로 고치고 1767년(영조 43)에 지금 이름인 산청으로 고쳤다. 安義는 본래 신라의 馬利縣인데 경덕왕 때 利安縣이라 고치고 공양왕 때 본래 신라 南內縣인 咸陰에 이속시켰다. 조선 태종 때 安陰이라 고치고 1767년(영조 43)에 지금 이름인 안의가 되었다. 따라서 이 지도는 1767년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지도의 제작 시기 추정에 있어 이와 같은 지명의 변천 뿐만아니라 山, 江 등의 자연적 요소의 표현과 도로, 鎭堡, 驛站, 山城, 陵園 등의 인문적 요소 그리고 지도 여백에 씌여진 註記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제작시기를 추정해야 한다. (민경이)

  • 뒷표지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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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해지도(左海地圖)〈奎 12229〉 1책 뒷표지 2면입니다.

  • 앞표지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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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해지도(左海地圖)〈奎 12229〉 1책 앞표지 1면입니다.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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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전라도〉부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古4709-23)》, 《八道地圖(奎10331)》처럼 각 分圖의 제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경기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순으로 총 8장의 분도가 나열되어 있다. 정상기가 그린 최초 지도의 원본은 다른 지도에서도 설명되어 있듯이 8장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그가 쓴 발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의 발문에서 경기, 호서, 호남, 영남, 영동, 해서, 관서, 관북의 순서로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발문에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지면에 그리고,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나뉘어 제작하였다고 한다. 《해좌지도》에서는 分圖를 나열하는 순서는 다소 다르지만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紙面에,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구분하여 나열되어 있다. 이렇게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은 후대 傳寫子에 달라 질 수 있고, 대체적으로 原本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상기의 原本계열의 河東鄭氏 지도임을 뒷받침하여 준다. 전라남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남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도해를 끼고 있기 때문에 섬이 많고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다.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섬은 有人島 300개에 無人島 1,6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제주도는 각종 화산지형의 발달이 탁월하고 난대성 식물이 자라며 전체적인 경관이 특이하여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漢拏山(1,950m)을 기준으로 동·서 사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반면에 남·북 사면은 경사 급하고 좁다. ‘한라’라고 하는 것은 은하(雲漢)를 끌어당길 만 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그 외 한라산은 봉우리가 평평하여 頭無岳, 높고 둥글어 圓山이라고도 한다. 高·梁·夫 3성의 시조가 제주의 삼성혈에서 출현하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1,271년(원종 12)에는 삼별초가 상륙하여 여몽연합군과 최후의 항전을 벌이기도 했다. (민경이)

  • 전라도 주기 (全羅道 註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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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전라도〉부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古4709-23)》, 《八道地圖(奎10331)》처럼 각 分圖의 제목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경기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순으로 총 8장의 분도가 나열되어 있다. 정상기가 그린 최초 지도의 원본은 다른 지도에서도 설명되어 있듯이 8장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그가 쓴 발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의 발문에서 경기, 호서, 호남, 영남, 영동, 해서, 관서, 관북의 순서로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발문에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지면에 그리고,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나뉘어 제작하였다고 한다. 《해좌지도》에서는 分圖를 나열하는 순서는 다소 다르지만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紙面에,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구분하여 나열되어 있다. 이렇게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은 후대 傳寫子에 달라 질 수 있고, 대체적으로 原本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상기의 原本계열의 河東鄭氏 지도임을 뒷받침하여 준다. 전라남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남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도해를 끼고 있기 때문에 섬이 많고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다. 지도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섬은 有人島 300개에 無人島 1,6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제주도는 각종 화산지형의 발달이 탁월하고 난대성 식물이 자라며 전체적인 경관이 특이하여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漢拏山(1,950m)을 기준으로 동·서 사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반면에 남·북 사면은 경사 급하고 좁다. ‘한라’라고 하는 것은 은하(雲漢)를 끌어당길 만 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그 외 한라산은 봉우리가 평평하여 頭無岳, 높고 둥글어 圓山이라고도 한다. 高·梁·夫 3성의 시조가 제주의 삼성혈에서 출현하면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1,271년(원종 12)에는 삼별초가 상륙하여 여몽연합군과 최후의 항전을 벌이기도 했다. (민경이)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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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평안도〉부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자강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일부지역과 평양직할시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이다. 평안도는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맞닿아 있고 서해로 청천강과 대동강이 유입된다. 내륙에는 낭림산맥을 경계로 함경도와 구분되며, 청천강을 경계로 평안북도와 평안남도를 구분 할 수 있다. 정상기 지도의 다른 사본인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八道地圖(古4709-23)》, 《八道地圖(奎10331)》와 비교해 볼 때 鴨綠江 강변의 把守지명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현재의 자강도 중강군과 화평군 지역은 2000m 이상의 험준한 산줄기가 보통일 정도로 높은 지형을 구성하고 있는 험준한 산악이다. 이에 따라 인구가 희박할 수밖에 없고, 더 나아가 인문 정보가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본 화면의 지도에도 산줄기와 물줄기를 제외하면 ‘嶺’이라는 고개와 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또  古茂昌과 古閭延 등 廢四郡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오지 중의 오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후대의 《靑邱要覽》이나 《東輿圖》 및 《大東輿地圖》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민경이)

  • 함경남도 (咸鏡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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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함경남도〉에 해당되는 分圖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남도 전체와 량강도 일부, 강원도 일부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로 특히 鄭允容의 서문이 소재되어 있는 지도이다. 지도 앞장에 서문과 八道 所屬官數, 八方拒京里數와 南北·東西 里數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팔도지도(10331)》는 각 分圖의 여백에 각 고을의 道里 정보가 기록되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관상태는 다른 정상기 사본 지도보다 손상이 심하지만 김정호의 《靑邱圖》·《大東輿地圖》로 이어지는 중요한 지도로 평가된다. 정상기 《동국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전 지도보다 압록강·두만강의 북쪽지방 윤곽선이 뚜렷해 졌다는데 있다. 이는 기존에 우리나라 북쪽 윤곽선이 정교하게 표현된 이이명의 《遼薊關防地圖》, 尹鍈의 《東國地圖》, 黃曄의 《輿地圖》를 底本으로 하여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白頭山-虛項嶺-鷹峯 등으로 이어지는 백두산맥을 경계로 함경북도 무산과 길주 지역이 구분된다. 후주와 삼수를 분리하는 하천은 두만강의 지류인 장진강이고 삼수와 갑산을 나누는 하천이 허천강이다. 이 지역은 2,000m 이상의 고봉들이 즐비한 산간지대이기 때문에 산지와 하천명을 제외하고 지도에 표시된 인문지리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 다른 사본지도에서 표기되어 있는 把守 지명도 이 지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민경이)

  • 함경북도 (咸鏡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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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함경북도〉에 해당되는 分圖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북도 전체와 량강도 일부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로 특히 鄭允容의 서문이 소재되어 있는 지도이다. 정상기의 원본 계열에 속하는 사본들은 跋文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경기도와 충청도를 하나의 圖面에 합쳐 그렸고, 함경도는 남도와 북도로 분리해서 그렸다. 또한 대부분 百里尺과 지도 跋文이 함경북도 紙面에 傳寫되어 있는데 《좌해지도(규1229)》에는 생략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는 사본마다 전사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 보완, 수정, 삭제 될 수 있다. 지도에서 보듯이 함경북도는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분리되며 경계변을 따라 烽燧와 鎭營 그리고 생략되어 있지만 파수가 나열되어 있었다. 촛불모양으로 표시된 봉수는 횃불과 연기로 위급 시 서로 연계되어 급보를 전하던 통신방법으로 국토의 해안지방에 설치되어 적의 침입을 대비하였다. 경흥에 위치하고 있는 무이(진)은 1398년(태조 7)에 세워진 곳으로 『輿地圖書』에 그 둘레가 2,820척, 높이가 9척인 石築으로 萬戶 1명이 배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만호는 원래 몽고로부터 전래되어 온 것으로 千戶, 百戶와 더불어 官이 다스리던 民戶의 數를 의미하였는데 차차 민호의 수와는 관계없는 鎭將의 품계를 나타내게 되었다. 만호는 대개 정4품관이며 육군보다는 수군에 이 명칭이 남아있다. 현재 러시아 경계 안에 있는 鹿(屯)島는 두만강에 의해 모래가 쌓여 형성된 三角洲로 여진족이 침입한 녹둔도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1586년(宣祖 19)에 군량을 모을 목적으로 屯田을 만들어 宣傳官인 金景訥을 둔전관으로 임명하고 造山萬戶인 李舜臣이 함께 관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1587년(선조 20) 에 楸島에 있던 여진족이 침입하여 겨우 府使 李慶祿과 이순신이 물리쳤다. 추후 北兵使 李鎰이 추도를 정벌하였다. 두만강 강변에 위치한 종성, 온성, 회령, 경원, 경흥, 부령 고을은 四君과 더불어 여진족 방어를 위해 두만강 하류 남안에 설치되었던 6진으로 국방상의 요지로 중요한 곳이었다. (민경이)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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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 《左海地圖(奎12229)》의 〈황해도〉부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황해북도, 황해남도에 해당된다. 《좌해지도(규1229)》는 정상기 《동국지도》의 원본계열인 河東鄭氏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지도이다. 황해도는 재령강과 예성강을 경계로 황해북도와 황해남도로 구분 할 수 있다. 왼쪽 위에서 흘러 내려오는 것이 대동강 본류이고, 아래쪽에서 북류하는 것이 재령강이다. 두 하천이 서로 만나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부분을 보통 急水門이라고 하는데, 썰물 때 지형적 특징 때문에 물살이 급하게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재령강의 하천 강변은 밀물 때 물에 잠기는 갯벌과 같은 지역이기 때문에 군사를 이동시키기가 어려워 황주목과 봉산군 사이의 산줄기를 넘거나 바로 서쪽을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본 지도에도 황주목과 봉산군 사이에 正方山城과 蒜山鎭이 설치되어 있었음이 보인다. 옹진의 所江行營은 원래 종3품의 水軍僉使가 파견된 소강진이었는데, 숙종 45년(1719)에 옹진도호부사가 황해도 수군절도사를 겸하게 되면서 行營으로 승격된 곳이다. 예성강 강변에는 하천과 관련된 지명이 보인다. 하천을 뜻하는 지명은 대개 ‘江’, ‘川’, ‘水’, ‘溪’, ‘灘’ 등이 붙는데 지도에서 ‘猪灘’도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큰 하천을 ‘강’이라 하고 작은 하천은 ‘천’이라 한다. ‘수’는 대하천의 지류에 널리 사용되고 고대 하천에 많이 사용된다. 하천의 최소단위가 개울(시내)인 ‘계’인데 여러 개울이 합하여 흐르면 ‘천’이라 한다. ‘탄’은 물길 가운데 암초나 바위, 자갈들이 많이 있어서 생긴 여울을 말하는데 일부 소규모 하천에서도 붙여진다. 대개 ‘강’, ‘천’, ‘계’ 의 순서로 하천 길이의 대소를 나타낸다. (민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