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古地圖
규장각 소장 220여종 6,000매에 달하는 고지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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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도

八道地圖 팔도지도

  • 편저자 : [作者未詳]
  • 청구기호 : 奎10331
  • 간행연도 : [刊年未詳]
  • 책권수 : 1帖(9折 9面),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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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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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지도(八道地圖)〈奎 10331〉 1책 앞표지입니다.

  • 강원도 (江原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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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으로 分圖 중 〈강원도〉 지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강원도 일부, 남한 행정구역상 강원도, 경기도, 경상북도, 충청북도 일부가 포함된다. 지도에는 한반도의 등줄기라 일컫는 태맥산맥과 春川에서 갈라지는 소양강과 임진강이 그려져 있다. 金剛山(1638m), 珍富嶺(529m), 彌時坡嶺, 雪岳山, 五色嶺, 五臺山, 大關嶺을 잇고 있는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고성, 간성, 양양, 강릉, 삼척과 서쪽에 있는 인제를 구분한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강산은 금강, 개골, 열반, 풍악, 지달 등 다섯 가지 의 이름이 있다고 한다. 산봉우리는 대략 12,000개이고 바위가 우뚝하게 뼈처럼 서서 동쪽으로 삼나무와 전나무가 울창하여 바라보면 그림과 같다. 일출봉, 월출봉 두 봉우리가 있어서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산에는 모두 108개의 절이 있는데 표훈사, 정양사, 장안사, 발연사 등이 가장 이름난 사찰이라고 한다. 동해에 접하고 있는 삼척 아래쪽에는 關東八景의 하나로 유명한 竹棲褸도 표시되어 있다. 죽서루는 五十川 변의 절벽 위에 만들어져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며, 현재 보물 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척 오른편에 표기되어 있는 鎭營은 三陟浦鎭을 의미하는데 종3품의 수군첨절제사가 파견되어 右營將을 겸했기 때문에 鎭營이라고 쓴 것이다. 강릉의 오대산 아래는 역대 實錄을 보관하던 창고인 史庫가 있다. 오대산 史庫는 영변의 묘향산 사고, 봉화의 태백산 사고, 강화의 마니산 사고, 무주의 적상산 사고를 포함하여 五大史庫라 부르는데 한일합방 후 일본 도쿄대학으로 옮겨졌다가 1923년 지진으로 없어졌다. 동해사면에 접하고 있는 흡곡에는 侍中臺가 표시되어 있다. 韓明澮(1415~1487)가 이곳에 올라 구경하다가 세조가 右議政으로 임명한다는 왕명을 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민경이)

  • 경기부충청도 (京畿付忠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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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으로 分圖 중 〈경기도·충청도〉 부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현재 행정구역상 북한과의 군사분계선 근처에 있는 황해북도의 개성시, 장단군, 연천군, 남한의 경기도와 충청도에 해당된다. 정상기의 《동국지도》 跋文에서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합쳐서 한 장의 지도로 만들고,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분리하여 두장의 지도로 하여 전체 여덟 장의 分圖 첩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지도는 이와 같은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정상기 지도의 원본계열의 초기 사본임을 입증하여 주고 있다. 하지만 발문에는 지도 여백에 씌어진 道里 註記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이는 지도를 전사하는 사람이 해 놓았거나 후대 소장자가 수록해 놓은 경우도 많다. 경기도와 충청도는 크게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구분되며 한강과 금강 유역권으로 대비된다. 한강 강변에 위치한 고을은 강화, 김포, 양주, 경도, 광주, 양근 여주, 충주, 청안(현 괴산군), 단양, 영춘(현 단양군) 등이다. 파주를 휘감아 도는 하천은 임진강이다. 금강 강변에는 한산(현 서천군), 석정(현 부여군), 부여, 공주 문의(현 청원군), 옥천, 영동 등이다. 강변에 위치한 고을들은 대체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단양의 경우 『新增東國輿地勝覽』形勝條에 산수가 기이하고 빼어났으니, 그 청숙한 기운이 반드시 축적될 리 없다고 하였다. 단양팔경으로 유명하며 옥순봉, 구담, 사인암, 도담 등의 경승이 많다. 보령의 왼쪽에는 水營이 표시되어 있다. 본래 1396년(태조 5)에 水軍僉節制使를 두어 보령을 관리하였는데 1421년(세종 3)에 都按撫處置使로 고쳤다가 1466년(세조 12)에 水軍節制使를 두었다. (민경이)

  • 경상도 (慶尙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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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으로 分圖 중 〈경상도〉 지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경상남도에 해당된다. 지도에는 1758년(영조 34)에 축성된 金烏山城과 1767년(영조 43)에 山陰과 安陰이 각각 山淸과 安義가 개명된 지명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지명 변천은 지도의 제작시기를 추정하는데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정상기 《동국지도》와 그 사본에서는 산을 하나로 이어진 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朝鮮圖》(일본대판부립도서관 소장)와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東輿圖》, 《大東輿地圖》에서 보여주는 산 표현 체계와 유사하다. 반면에 《靑邱圖》와 청구도 異名인 《靑邱要覽》에서의 산은 산봉우리만 그리는데 이것은 지면이 복잡하지 않도록 하여 그 여백에 주기를 써넣어 지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동쪽과 북쪽 주변을 감싸고 있는 낙동강 상류지역에는 안동, 영주, 봉화, 영양, 청송 등이 위치하고 있다. 黃池에서 흘러나오는 낙동강은 안동에서 반변천을 합한다. 현재는 안동의 안동댐과 반변천의 임하댐이 건설되어 있다. 안동은 후삼국시대의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치열한 전쟁 끝에 승리하여 후삼국통일의 기반을 굳힌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퇴계 이황 이후 주자학의 전통을 이은 고장으로 儒林의 문화와 더불어 河回마을과 같은 동족촌이 남아 있다. 조령(642m), 속리산(1058m), 백화산(1064m), 대덕산,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소백산맥과 오른쪽의 낙동강 사이에 문경, 함창, 상주가 위치하여 있다. 조령은 조선시대 京都로 가는 嶺南路가 통과하는 매우 주요한 지점이었다. 상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사벌주로 1018년(현종 9) 5도 양계를 확정지을 때 처음으로 경주와 상주의 첫 글자를 따서 경상도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경상도의 가장 남쪽바다에는 남해, 곤양, 사천, 고성, 통영 등이 위치하고 있는데 해안선이 복잡하고 예부터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곳이다. 우리나라 제4위의 큰 섬인 남해도는 이순신(1545~1598)이 왜적과의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 순국한 노량해전의 현장이다. 지도를 보면 창선도는 진주의 越境地로 표시되어 있다. 월경지는 다른 부군현의 경계에 있는 땅으로 조선시대에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가 1896년 행정구역 개편 때 대부분 인접 군현에 흡수되었다. 월경지의 발생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은 고려시대까지 독자적으로 존재하던 군현, 향, 부곡 등의 속현이 조선 초에 독자성을 상실하면서 경계를 맞대고 있지 않던 주현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륙의 고을이 해안가의 해산물 공급을 위해 월경지를 갖게 된 것, 또 외적의 침입으로 내륙이나 해안가에 피난 갔던 지역을 그대로 소유하게 되면서 월경지가 발생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민경이)

  • 전도 (全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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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 지도로 마지막 장에 소재되어 있는 八道總圖이다. 정상기의 《동국지도》 跋文에서 언급했듯이 지도는 총 8장의 分圖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후대의 사본들을 보면 그 구성이 다소 차이가 있다. 본 《八道地圖(奎10331)》를 비롯하여 고려대 박물관 소장의 《朝鮮全圖(D129)》, 국립중앙도서관의 《大東地圖(한61-9, 귀121)》 등은 八道總圖를 포함하고 있다. 이 사본에 포함되어 있는 팔도총도는 정상기의 大全圖를 축소시킨 것인데 원래 정상기의 八道分圖 帖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팔도총도는 후대의 校補者가 열람의 편의를 위해 덧붙인 것이라 판단된다. 지도에서 보듯이 왼쪽 상단 여백에는 八方拒京里數 및 四偶道里 註記가, 오른쪽에는 跋文이 소재하여 있다. 발문은 정상기 원본과 비교해 볼 때 각 도별도와 범례의 채색을 설명하는 끝부분 내용이 누락되어 있다. 《八道地圖(奎10331)》 총설에도 설명되어 있듯이 이 지도는 1776년에 개명된 평안도 楚山이 표시되어 있고, 1787년에 처음으로 설치된 함경도 長津府가 없는 것으로 1776년에서 178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八道總圖와 八道分圖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평안도 分圖에서 楚山 지명이 팔도총도에는 개명 전인 理山으로 되어 있고, 경상도 分圖에서 山淸 지명이 개명 전 지명인 山陰으로 표시되어 있다. 즉 팔도총도와 팔도분도의 제작이 반드시 동일인에 의해 동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으며, 추후 덧붙여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팔도분도는 전체적인 윤곽 파악이 어렵고, 大全圖는 휴대하기 불편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大全圖를 축소시킨 八道總圖가 필요했을 것이다. (민경이)

  • 전라도 (全羅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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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으로 分圖 중 〈전라도〉 지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에 해당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八道地圖〉(古4709-23)와 비교해 보면 해안 윤곽선과 담고 있는 정보의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크기가 다른 원형 모양의 고을의 범례 표시가 군현의 크기에 따라 더욱 부각되어 그려지고, 바다 가운데 海路와 지도 여백에 道里 정보가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후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로 이어지면서 지역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기위해 지도 여백에 註記를 덧붙이고 여러 범례를 사용하는「地圖標」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한반도의 서남단은 해안선의 출입이 심해 섬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반도와 만이 많다. 지도에는 섬들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상대적인 위치관계가 부정확하게 표현되어 있고, 섬의 대소도 실제를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 강진은 1417년(태종 17) 道康縣과 耽津縣을 합해 만들어진 고을로 전라도 해안 방어의 요충지에 해당한다. 지도 왼쪽의 兵營을 비롯하여 해안가와 바다에 진영이 그려져 있다. 兵馬節度使營은 전라도 육군의 총본부로서 1417년(태종 17) 본래 광산현에 설치된 것을 옮겨온 것이다. 1599년(선조32)에 권율의 상소로 일시 장흥으로 옮겨갔으나 1604년 다시 원래대로 복귀하였다. 남쪽 바다의 新智島鎭과 古今島鎭도 강진에 속한 진영이다. 고금도진은 1598년(선조 31)에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주둔하여 募民屯耕하면서 왜선을 격파했고, 명명 陣璘도 군대를 주둔시켜 왜군을 제압하는데 일조를 하여 명나라까지 알려졌던 곳이다. 전라 左道와 右道에 각각 全羅左水營과 전라우수영이 표시되어 있다. (민경이)

  • 평안도 (平安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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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으로 分圖 중 〈평안도〉 지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자강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일부지역과 평양직할시에 해당된다. 《팔도지도(규10331)》는 1776년에 개명된 평안도 楚山이 표시되어 있고, 1787년에 처음으로 설치된 함경도 長津府가 없는 것으로 1776년에서 178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八道地圖(古4709-23》와 비교해 볼 때 담겨진 자연적·인문적 정보는 거의 비슷하다. 다른 分圖에는 소재되어 있는 道里 정보가 생략되어 있고, 지금의 서한만의 身彌島 주변 海路가 신설되고, 서해갑문 주변의 섬지역이 추가되어 그려진 점은 다르다. 지도에 보이는 큰 물줄기는 鴨綠江으로 수많은 把守가 늘어서 있다. 파수는 오늘날의 국방상 중요한 요지에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경비를 서는 초소와 같은 곳이다. 두만강변의 6진과 더불어 압록강변의 4군( 閭延, 慈城, 茂昌, 虞芮)은 세종 때 여진족 정벌을 위해 설치했던 곳으로 4군은 1455년(단종 3)에 철폐된 후 폐사군 지역으로 불린다.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 부근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渭原·楚山·義州를 거처 龍川의 용암포의 綃下流에서 황해로 유입한다. 압록강은 예로부터 鴨江, 淸河, 마자수, 패수, 奄利大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졌고, 중국에서는 황허강, 양쯔강과 함께 천하의 三大水라 하였다. (민경이)

  • 함경남도 (咸鏡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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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으로 分圖 중 〈함경남도〉 지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남도 전체와 량강도 일부, 강원도 일부에 해당된다.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도들은 『東國與地勝覽』에 삽입된 八道總圖와 道別圖(〈東覽圖〉)처럼 대부분 紙面의 모양에 따라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거리나 방위들이 정확하지 못했다. 정상기(1678~1752)는 조선전기 지도에서 왜곡되었던 북부지방의 윤곽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려 했다.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의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지도와 같이 압록강과 두만강의 북부지방이 보다 原形에 가까운 경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지도에 보이는 큰 물줄기는 두만강으로 후주강, 장진강, 허천강의 지류도 보인다. 부전강과 허천강 사이는 우리나라 최고 最廣의 고원지대인 개마고원이다. 일찍이 화전민에 의한 조, 구리, 콩, 감자 등의 粗放농업이 성한 곳이다. 永興 고을 주변의 하천은 龍興江으로 동해로 유입되며 馬熊島 지금의 호도반도와 만난다. 호도반도는 동해안에서 보기 드물게 해안선이 복잡하고 섬이 많은 곳이다. 낭림산맥을 경계로 평안도와 구분되며 백두산(2,744m)을 정점으로 하는 마천령산맥과 낭림산맥이 영흥과 정평 고을을 지난다. 안변 고을의 高山驛은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있었으며, 13개의 屬驛을 거느리고 있었다. 고려 때는 전국의 도로를 大·中·小로 삼등분하고, 547개의 역에 22명의 병부소속 驛丞, 驛長, 驛丁을 두었다. 1457년(세조 3)에 역승을 찰방이라 개칭하고 전국 538역을 40구역으로 나누어 찰방을 두었다. 찰방이 주재하는 역을 찰방역이라 하였고 찰방은 관내의 속역을 관할하였다. 찰방은 종6품관으로 『大典會通』에 의하면 경기도에 6명, 충청도 5명, 경상도 11명, 전라도 6명, 황해도 3명, 강원도 4명, 함경도 3명, 평안도 2명을 배치하였다. 안변 아래쪽은 함경도와 강원도를 가르는 鐵嶺이 위치하고 있다. (민경이)

  • 함경북도 (咸鏡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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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으로 分圖 중 〈함경북도〉 지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북도 전체와 량강도 일부에 해당된다. 지도 여백에는 吉州, 明川, 鏡城, 富寧, 會寧, 鍾城, 穩城, 慶源, 慶興의 道里 註記가 里數가 아닌 시간 개념의 日程으로 씌어져 있다. 그 당시에는 직선거리를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측정하기 불가능했고 里數개념 보다 日程 개념이 실생활에 지도와 더불어 더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道里 정보는 『東國與地勝覽』일 가능성이 높다. 먼저 목판본으로 되어 있어 다른 地理志들 보다도 민간에게 널리 퍼져 있었고, 정상기의 지도 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濟州, 黑山, 紅衣, 可佳, 鬱陵島 등의 섬은 소재지의 방향에 里程數만 주기를 했다고 하고 있는데 이들 섬들의 里程數는 『世宗實錄地理志』나 『新撰八道地理志』에는 실려 있지 않다. 圖面에는 跋文과 百里尺이 게재되어 있다. 백리척의 전체 길이는 10寸이 되는데 이를 이등분하여 위쪽의 반을 1寸씩 구분해 놓고 있다. 발문에서는 거리와 방위가 정확하지 못한 결함을 지적하면서 지도의 제작경위와 산천의 험준함과 거리의 遠近을 고려한 백리척의 사용, 지방의 크기에 따라 함경도를 남도와 북도로 구분하고, 경기도와 충청도를 한 지면에 그린 점, 도별도와 山水, 道路, 烽燧, 驛 등의 彩色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 《八道地圖(古4709-23)》와 비교해 보면 지도의 북쪽 경계의 윤곽선과 담고 있는 정보의 내용도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크기가 다른 원형 모양의 고을의 범례 표시가 군현의 크기에 따라 더욱 부각되어 그려지고, 바다 가운데 섬이 추가되고 각 경성과 경흥이 연계된 새로운 도로 체계가 신설되었다. 두만강 강변에는 종3품의 兵馬僉節制使가 파견된 高嶺鎭 · 甫乙下鎭과 변방 초소에 해당되는 수많은 把守가 표시되어 있다. 또 두만강 변에는 세종 때 동북방면의 여진족 침입에 대비하여 鍾城, 穩城, 會寧, 慶源, 慶興, 富寧 등 국방상 요지에 6鎭을 설치하기도 했다. 회령 오른쪽에는 行營이 있는데 咸鏡北道兵馬節度使가 머무는 곳이다. (민경이)

  • 황해도 (黃海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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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八道地圖(奎10331)》인데 鄭尙驥 《東國地圖》의 原圖 계열을 따르는 사본으로 分圖 중 〈황해도〉 지도이다. 현재 북한 행정구역상 황해북도, 황해남도에 해당된다. 지도 여백에는 兎山, 白川, 新溪, 瑞興, 遂安 등 서울까지의 거리 정보인 道里 註記가 씌어져 있다. 이러한 道里 정보는 『東國與地勝覽』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먼저 목판본으로 되어 있어 다른 地理志들 보다도 민간에게 널리 퍼져 있었고, 정상기의 지도 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濟州, 黑山, 紅衣, 可佳, 鬱陵島 등의 섬은 소재지의 방향에 里程數만 주기를 했다고 하고 있는데 이들 섬들의 里程數는 『世宗實錄地理志』나 『新撰八道地理志』에는 실려 있지 않다. 山系는《朝鮮圖》(일본대판부립도선관 소장)와 규장각에서 온라인 서비스되고 있는《東輿圖》, 《大東輿地圖》와 같이 산을 하나로 이어진 脈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도에 사용된 범례를 살펴보면 각 군현은 원형모양 안에 고을 地名을 쓰고, 상위의 고을일 경우 테두리를 부각시켜 표현하였다. 봉수는 촛불모양, 鎭營은 정사각형 모양을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방법들은 후대 김정호의 《大東輿地圖》로 이어지면서 지역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담기위해 지도 여백에 註記를 덧붙이고 여러 범례를 사용하는「地圖標」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해주만에 접하여 있는 강령은 1428년(세종 10)에 永康縣과 白翎島를 합하고, 각 명칭에서 한자씩 따다가 강령현을 만들었다. 황해에는 長山串, 登山串이 보이는데 ‘串’이란 半島에 대한 옛 명칭으로 바다 쪽으로 튀어나간 육지를 일컫는 어미이다. 옹진에는 황해도 水軍節度使가 파견된 所江行營이 표시되어 있다. 원래 종3품의 水軍僉節制使가 파견된 소강진이었는데, 1719년(숙종 45)에 순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다. 僉節制使는 첨사로 조선시대 때 각 진영에 속해 있은 종3품의 무관직이다. 첨사는 각각 兵營에 파견된 병마첨절제사와 水營에 파견되었던 수군첨절제사로 나뉜다. 첨사는 종3품관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경상도 다대포와 평안도 만포진에는 정3품 堂上官으로 임명하였고, 특히 수군으로 중요한 해안지방과 육군으로 평안, 함경도 지방의 독진과 그 진관에는 수령이 겸하지 않고 전문적인 무관으로서 첨절제사를 두었다. 이 경우에 한하여 첨사라고 약칭하였다. (민경이)

  •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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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지도(八道地圖)〈奎 10331〉 1책 뒷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