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江原道> 지도로, 지도의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은 ≪東覽圖≫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東覽圖≫가 『新增東國輿地勝覽』의 附圖적 성격이 강한데 반해, 이 지도책의 경우 하나의 독립된 지도로서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다. 강원도 각 군현의 상대적인 위치와 군현의 진산 등을 위주로 그린 점은 ≪東覽圖≫와 일치하지만, 본 지도에서는 군현명 좌우에 군현의 관품과 서울까지의 일정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監營地인 原州의 경우, ≪東覽圖≫에서는 군현명만이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군현을 표시하는 원 외부에 ‘監營’이라고 표시해 주고 있다. 또한 ≪東覽圖≫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정보로 동해안의 해안선을 따라 관동팔경이 해당지역에 표시되어 있어 당시에도 관동팔경의 명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울릉도와 우산도의 위치 관계에 있어서 ≪東覽圖≫에서는 울릉도의 좌측에 우산도가 거의 일직선 선상으로, 그리고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본 지도에서는 울릉도는 세로로 긴 타원형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 크기도 우산도의 3배 정도 크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우산도는 울릉도 아래쪽에 좌우로 긴 타원형 안에 ‘于山’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京畿> 지도로, 地圖名이 지도 우측 상단에 ‘京畿’라고 표시되어 있다. 지도의 전체적인 양식은 ≪東覽圖≫를 따라, 水系를 중심으로 각 郡縣의 鎭山을 그린 간략한 내용의 지도이다. 그리고 내·외도각선 사이에는 京畿道가 각 방향으로 접하는 지역의 道名과 海가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東覽圖≫와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첫 번째는 京都를 두드러지게 표현했던 ≪東覽圖≫와 달리 본 지도에서는 군현과 비슷한 크기의 원 안에 ‘京’이라고만 표시하고 있을 뿐, 따로 성곽을 표시하거나 특별한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東覽圖≫에서는 각 郡縣을 세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표시하고 그 내부에 地名을 표시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 대신 원을 사용해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각형 표시는 도 내의 주요 驛道와 해안가 변경의 鎭堡를 나타낸다. 산의 모습은 ≪東覽圖≫와 같이 독립적인 산봉우리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바다는 물결 모양의 水波描가 그려져 있지 않으며 하얗게 나타나고 있다. 鎭堡나 烽燧, 또는 군현의 명칭 이외의 인문적 정보는 거의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내·외도각선 사이에는 ≪東覽圖≫와 같이 京畿道가 각 방향으로 접하는 지역의 道名과 海가 표시되어 있으며, 여기에 추가해 접하는 지역의 郡縣名과 察訪驛을 포한한 驛의 總數, 그리고 官數가 표시되어 있다. 지도상에 기록된 註記 및 지도상에 표시된 정보를 통해 ≪東覽圖≫보다 더 자세하고 상세한 지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의 독립된 지도책임을 알 수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조선의 八道 가운데 <慶尙道> 지도로, ≪東覽圖≫의 도별도와 비슷한 양식인 하천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지도상에서 본 지도책의 제작 연대를 추정 할 수 있는 지명들을 찾을 수 있다. 즉, ≪東覽圖≫에는 없는 漆谷(1630)과 慈仁(1637)이 본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1676년(숙종 2)에 신설된 英陽과 1693년(숙종 9)에 복설된 順興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본 지도 또는 이 지도의 원본이 제작된 시기로 추정하는 17세기 중후반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양윤정)
본 지도책에 수록되어 있는 <東國八道大總圖>의 전체적 윤곽 및 형태는 ≪東覽圖≫의 <八道總圖>를 따르고 있다. 즉 한반도의 모양이 동서로 부풀려져 있고, 남북으로는 함축되어 있는 모습이다. 특히 <八道總圖>와 같이 북부지방이 남부지방에 비해 매우 작게 그려져 있으며, 압록강과 두만강이 거의 수평에 가깝게 그려져 있어 당시의 변경지역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았음을 알 수 있다. 또는 변경지역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 앞서서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책인 만큼 과거부터 전해져온 조선전도의 모습을 그대로 전사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그 내용면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보인다. 우선 ≪東覽圖≫의 <八道總圖>에서 중요하게 표시되었던 제사처에 많은 변화가 보인다. 즉, 14개의 中祀와 19개의 小祀가 모두 표시되어 있던 <八道總圖>와 비교해보면, 본 지도에서는 中祀를 지내던 14곳 중 ‘충청도 공주·경상도 양산·평안도 평양·경기도 장안’ 4곳이 생략되어 있으며, 小祀의 경우에는 ‘충청도 공주·전라도 나주·경기도 적성·도 양주·황해도 장연’ 5곳만이 표시되어 있다. 이처럼 지도상에 표시된 정보에 차이가 있음은 『新增東國輿地勝覽』의 附圖로서 제작되었던 ≪東覽圖≫와 附圖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地圖로서 일반 수용자들이 필요로 했던 정보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八道總圖>와 비교해 새롭게 추가되었거나 생략된 자연 지명도 있다. 첫째, 전국적으로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산이나 <八道總圖>에서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던 평안도의 妙香山, 황해도의 九月山, 강원도의 楓岳山, 경기도의 太白山, 전라도 제주의 漢拏山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八道總圖>에서는 白頭山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본 지도에서는 長白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둘째, <八道總圖>에는 거의 표시되지 않았던 하천명이 본 지도에서는 조선시대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다. 平壤江·九津溺水·阿斯津은 大同江으로, 德津은 臨津(江)으로, 熊津은 錦江으로, 伽倻津은 洛東江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沸流水는 생략되어 있다. 셋째, 섬의 경우에는 <八道總圖>에 있던 녹둔도, 적도, 우산도, 거제, 남해, 완도, 흑산도, 군산도, 교동이 생략되고 嗚呼島가 새로 추가되었다. 또한 제주도의 위치와 크기가 <八道總圖>에 비하면 실제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지도상에 표시된 정보 외에도 가장 큰 차이점은 <八道總圖>에는 없었던 註記가 본 지도의 좌우 여백에 적혀 있다는 것이다. 주기의 내용은 한반도의 위치와 크기 및 당시 조선에서 관리가 파견되던 행정 단위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으며, 한반도의 지도상에는 각 道별로 속해있는 官의 총수가 기록되어 있다. <八道總圖>와 구별되는 이런 점을 통해, 본 지도는 『新增東國輿地勝覽』의 附圖로 제작된 <八道總圖>와는 상당히 다른 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양윤정)
조선 후기 민간에서 유행했던 천하도, 중국·일본·유구국의 지도와 우리나라 전도 및 도별도가 결합된 지도책에 수록된 琉球國 지도이다. 유구국은 오늘날의 오키나와제도로, 1870년 일본에 병합되기 이전까지는 독립국이었다. 그리고 조선 중기까지는 조선과 교류가 잦았던 곳이기도 하다. 본섬의 윤곽과 내용, 주변 섬의 배치 등은 조선 전기의 신숙주가 편찬한 『海東諸國記』에 실려 있는 지도와 유사하다. 도면의 방향이 『海東諸國記』에 실려 있는 지도와는 다르지만, 王城과 國頭城의 위치와 성곽, 산맥을 표현한 기법 등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계속해서 전사되어 온 지도라고 볼 수 있다. 지도의 내용은 매우 소략하며, 본 섬과 주변의 여러 섬들이 그려져 있다. 본 섬에는 國都·國頭城·寶庫 등이 그려져 있으며, 모두 성곽 표시가 되어 있다. 특히 국도에는 왕이 거주하는 지역과 王弟·大臣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寶庫와 그 우측의 國庫의 경우에는 『海東諸國記』의 일본지도에서는 바다의 섬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육지에 그려져 있다. 당시인들이 유구에 대한 인식의 수준과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지도로서, 전기의 『海東諸國記』에서 보여 주는 인식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윤정)
조선 후기 많은 木版本 지도책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일본도는 그 모양이 부정확하고 실려 있는 내용도 매우 소략한 편으로, 본 지도책에 실려 있는 <日本國圖>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신숙주의 『海東諸國記』에 실려 있는 일본 지도에 비해 매우 소략하고 전제적인 윤곽 또한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본 지도를 보면, 남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여 對馬島가 지도 우측 아래쪽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혼슈의 7도와 큐슈의 서해도 시코쿠의 四州를 그리고 그 외에 섬들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큐슈와 시코쿠 등의 섬이 다름 섬들에 비해 크기가 작게 그려져 있다. 지도상에 표시된 산천은 지도 중앙에 표시되어 있는 ‘芳田山’과 대마도의 ‘先神山’ 그리고 ‘近江’이 전부이다. 그리고 따로 山系나 河系를 표시하고 있지 않다. 팔도의 지명 옆에 소속 州의 숫자와 대표적인 州를 표기하고 있으며, 殿名과 금·은·유황과 같은 토산물도 수록되어 있다. 지도의 내제 우측 여백에는 당나라 태종 때 학자인 顔師古의 화이도에서는 일본이 수록되어 있지 않았음이 기록되어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조선의 팔도 가운데 <全羅道> 지도로, 다른 도와 마찬가지로 주요 하천과 각 군현의 鎭山을 소략하게 그려 넣었다. ≪東覽圖≫에서는 지도상에 표시된 기본 정보인 郡縣과 兵·水營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세로로 긴 직사각형 기호만을 사용해 표시하고 있다. 즉 전라도의 경우 각 군현과 左水營·右水營·兵營이 직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그 안에 地名과 ‘左水營·右水營·兵營’이 표기되어 있다. 본 지도에서도 군현과 統營·水營·兵營을 모두 원으로 표시하고 있으며, 각 군현에는 地名과 함께 군현의 관품과 서울까지의 일정이 병기되어 있다. 또 이 정보들은 그 명칭만으로도 구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혼돈을 줄 염려는 적다. 다만 ≪東覽圖≫에서는 左水營·右水營을 구분하여 표기하고 있으나 본 지도에서는 구분하지 않고 水營으로 포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지도상에 표시된 위치로 알 수 있는 정보이다. 그리고 본 지도에서는 사각형 기호도 사용하고 있으며, 사각형 기호는 각 도의 주요 驛道와 해안 변경의 鎭堡를 표시하고 있다. (양윤정)
본 지도책에 수록된 <中國圖>는 중국 내지를 그린 지도로서, 우공의 九州·전국시대의 11國·명대의 13省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역대 왕조의 도읍을 표기했으며, 특히 각 省의 지명과 함께 그 지역에 응거했던 역대 왕조와 제왕을 비록한 주요 현인, 왕릉을 비롯한 고적 등이 지도상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黃鶴樓와 鳳凰臺와 같은 유명한 누대, 그리고 赤壁·洞庭湖 등의 명승지도 그려져 있다. 따라서 이 지도는 당시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중국의 역사부도적인 성격의 지도로서, 사대부들이 讀史할 때 이용했던 지도로 생각된다. 중국도의 그려진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전체적 윤곽이 정확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위치 및 반도의 특징은 잘 나타나 있다. ‘朝鮮國’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 대한 정보는 白頭山이 전부이다. 그리고 일본은 지도상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양윤정)
본 지도책에 수록된 <天下圖>는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木版本 지도책에 많이 실려 있는 원형의 천하도로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내대륙, 이를 둘러싸고 있는 내해, 가상의 여러 나라들이 있는 고리 모양의 외대륙, 그리고 외대륙의 밖에 있는 외해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내대륙에는 黃河·江水·赤水·黑水·洋水 등의 대하천과 恒山·華山·太山·衡山·嵩山 등의 五嶽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황하가 발원하는 崑崙山을 중심에 위치시키고 있다. 내해와 외대륙에는 주로 『山海經』이나 중국의 史書에 나오는 가상의 나라들이 표시되어 있다. 당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지도로서, 원시 수목신앙, 도교·불교·유교적 세계관이 혼합되어 있는 지도라고 볼 수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조선의 八道 중 <忠淸道> 지도로, 54개의 군현과 군현의 진산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행정 단위에 있어서 실질적인 기능이 있었던 도의 구분이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다. 즉, 좌도와 우도로 구분되어 각각에 속한 군현의 숫자가 도곽선 여백에 표시되어 있다. 하천의 명칭이 표기되어 있지 않았던 ≪東覽圖≫와 달리 본 지도에서는 扶餘縣 좌측에 ‘白馬江’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東覽圖≫에서 유일하게 표기되어 있던 현재의 아산만 지역의 犯斤乃浦는 생략되어 있다. (양윤정)
민간에서 제작된 대표적인 木版本 지도책에 수록된 <平安道> 지도이다. 지도의 윤곽은 ≪東覽圖≫의 형태를 따라 소략하게 그려져 있다. 다만 ≪東覽圖≫와 차별되는 점은 바다의 모습이 물결 모양의 水波描로 채워져 있지 않고 하얗게 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東覽圖≫의 경우에는 연안에 도서가 하나도 그려있지 않지만, 본 지도에서는 ‘櫝島’가 표시되어 있다. ≪東覽圖≫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島의 추가는 평안도뿐만 아니라 황해도에서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압록강 변에는 중요한 군사기지인 鎭堡가 직사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역시 ≪東覽圖≫에는 없는 정보로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와 해안·국경지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조선의 八道 가운데 <咸鏡道> 지도로, 다른 도별 지도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양식은 ≪東覽圖≫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東覽圖≫에 비해 鎭堡를 비롯한 군사적 정보가 북쪽 경계면을 중심으로 많이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팔도 가운데 전체적인 윤과의 왜곡이 가장 심하다. 즉, 세종대에 개척되었던 동북쪽의 六鎭 지역이 너무 남쪽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두만강의 유로도 북쪽이 거의 수평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이 지도책에 수록된 朝鮮全圖인 <東國八道大總圖>에서는 白頭山 위치에 長白山이 표시되어 있지만, <咸鏡道> 道別道에서는 白頭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양윤정)
본 사이트의 지도는 八道 중 <黃海道> 지도로, 절대적 면적으로 가장 작은 면적을 지니고 있지만 같은 크기의 지도책에 그려지면서 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특별하게 내용이 첨가된 부분은 없으며, 다른 도와 마찬가지로 河川을 중심으로 각 군현의 鎭山과 주요 驛島 및 鎭堡가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東覽圖≫에서는 한개도 표시되지 않았던 島가 본 지도에서는 長淵 부근에 ‘椒島’가 표시되어 있다. (양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