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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州三邑地圖 제주삼읍지도

  • 편저자 : [濟州三邑(朝鮮) 編]
  • 청구기호 : 奎10482
  • 간행연도 : [高宗9年(1872)]
  • 책권수 : 1張, 彩色圖
  • 판본사항 :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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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삼읍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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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삼읍전도 濟州三邑全圖, 제주도를 그린 지도로 조선시대의 제주도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고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지도의 제작시기는 다른 군현의 지도와 달리 1872년이 아니다. 大靜, 旌義 등의 고을이 縣이 아닌 郡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895년의 지방행정구역 개편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는 조선시대에 전라도에 속해 있었고 해방 이후 도제 실시와 함께 분리되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독특한 문화와 풍속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변방에 있으면서도 군사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지도제작이 활발하여 지금도 제주도의 다양한 지도가 남아 있기도 하다. 지도는 육지부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 남쪽이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주위에 干支로 된 24방위를 배치한 점이 독특하다. 제주도와 같이 육지부에 인접한 섬이 아닌 경우에는 섬의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방위와 주변 지역을 일부 그려 넣기도 했다. 남쪽으로는 중국뿐만 아니라 安南國, 暹羅, 滿剌加, 占城 등의 동남아시아 나라들도 그려져 있다. 기생화산인 오름의 모습을 자세히 그렸고 중산간 지대에는 10개의 목마장을 경계와 함께 표시하였다. 各面에 소속된 마을들을 직선으로 연결하여 인접한 面과 구분한 점도 다른 지도에서 볼 수 없는 점이다. 군현의 이름과 해안의 鎭名이 붉은 색으로 강조되어 표시되었다. 특히 해안의 봉수대와 포구가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 한라산의 靈室에는 많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五百將軍이 그려져 있다.

  • 제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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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지도 濟州地圖, 조선시대의 제주목은 지금의 제주시 지역과 북제주군 조천읍, 구좌읍,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 우도면 일대에 해당한다. 읍치는 제주 시내 일도동, 이도동 일대에 있었다. 현재 이곳에는 관덕정과 같은 일부 건물이 남아 있고 목관아지가 발굴, 복원 중에 있다. 지도는 제주삼읍전도처럼 한라산이 있는 남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지도의 하단에는 남해안의 고을과 포구, 도서들을 배치하여 상대적인 위치를 파악하도록 하였다. 해안의 鎭과 포구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禾北鎭의 別刀浦와 朝天鎭의 朝天浦는 육지와 교류하던 관문에 해당한다. 해안에 상세하게 표시된 煙臺와 烽燧 등을 통해 지도의 군사적 성격도 엿볼 수 있다. 서쪽의 上貴里에는 ‘土城’이라는 표시가 강조되어 있는데 이는 삼별초군이 몽고를 상대로 항거했던 곳이다. 읍치의 남쪽에는 高?梁?夫 三姓의 탄생 신화가 남아 있는 삼성혈의 모습이 보이고 그 남쪽 三義陽岳에는 산천제를 지냈던 山川壇도 표시되어 있다. 중산간 지대에는 많은 목마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1, 2, 3, 4, 5, 6소장이 있었다. 동쪽과 서쪽의 上大路에는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원취락도 표시되어 있는데 濟泉院과 利往院이 그것이다. 이 주변에는 生水, 寺泉과 같은 水處가 표시되어 있다. 제주도는 화산암 토양으로 이루어져 물이 귀하기 때문에 촌락의 입지에 용수가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한라산의 분화구에 있는 백록담은 지명처럼 흰색으로 표현한 점이 이채롭다.

  • 대정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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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정군지도 大靜郡地圖, 대정현이 대정군으로 표기된 것을 볼 때 1895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이후 지도가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대정군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안덕면 지역과 서귀포시 가운데 서쪽 지역(강정동 이서)에 해당한다. 읍치는 대정읍 보성리, 인성리, 일대에 있었다. 현재 이 지역의 중심지는 해안의 모슬포 지역으로 읍사무소도 이 곳에 위치해 있다. 지도는 보통의 회화식 군현지도와 달리 읍치를 확대하여 표현하지 않고 주변지역과 동일한 축척으로 그렸다. 산간 지역에는 목마장이 있었는데 7소장과 8소장이 설치되어 있었고, 서쪽 지금의 신도리에는 소를 키웠던 毛洞場이 경계선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읍치에는 읍성의 모습을 선으로 간략하게 표현하였고, 성안에는 衙舍, 客舍라는 표시만 있고 관청 건물은 전혀 그리지 않았다. 남쪽의 單山 아래에는 향교가 있었는데 지도에는 ‘文廟’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 지역의 명산으로 이름난 산방산이 독특하게 그려져 있으며 현재 ‘용머리’라 불리는 해안의 절경에는 ‘龍頭’라고 표기되어 있다. 귤을 재배하여 국가에 공납하던 果園은 원 안에 ‘果’라는 글자로 표시하였다. 다른 지도와 달리 도로가 그려져 있지 않은데, 대신에 중산간 지대의 ‘上大路’, 해안 저지대의 ‘下大路’ 등으로 구분하여 표시하였다.

  • 정의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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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군지도 旌義郡地圖,旌義縣이 旌義郡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지도는 1895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대정군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표선면, 남원읍과 서귀포시 가운데 시내 동쪽 지역에 해당한다. 읍치는 남제주군 성산읍 성읍리에 있었다. 원래는 동쪽의 水山鎭 부근에 있었으나 왜구의 침략이 빈번하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지금도 이곳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읍성, 민가 등이 보존된 민속마을이 남아 있다. 중산간에 설치되었던 牧馬場으로는 9소장, 10소장이 이 지역에 있었고, 녹산장과 같은 광활한 산장도 만들어져 있었다. 읍치지역과 주변지역을 동일한 축척으로 그렸기 때문에 객사, 아사, 문묘 등의 표기만 보인다. 동쪽의 성산 일출봉은 봉우리의 모습을 다소 독특하게 표현하였고, 그 옆에는 지금의 신양해수욕장에 해당하는 모래사장의 표시도 보인다. 서쪽 西歸鎭은 현재의 서귀포시 시내에 해당한다. 그 서쪽 法還里 근처에는 大畓이 표시되어 있다. 원래 제주도는 화산암 토양으로 이루어져 벼농사에 적합하지 않지만 이 지역은 풍부한 용수를 이용하여 벼농사가 행해지던 곳이었다. 관광지로 유명한 천지연폭포, 정방폭포에는 ‘天帝淵’, ‘正方淵’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중산간 지역 西衣貴 근처에는 衣貴院이 표시되어 있는데 성읍에서 서귀로 가는 길가에 있어서 나그네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院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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