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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현 행정구역상으로 부산광역시 남부를 나타낸 것이다. 동래부는 본래 현이었으나 일본에 왕래하는 첫 길이었으므로 1592년(선조 25)에 현령으로 강등하였다가 다시 부로 승격되었고, 1749년(영조 25)에는 獨鎭으로 승격되었다. 동래 읍치의 북쪽에 있는 輪山이 이 고을의 진산이고, 그 오른쪽에 古國基가 있다. 부근에 지금도 동래온천으로 유명한 온천이 표 시 되어 있다. 이곳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을 대비한 관방 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경상좌도 수군을 총지휘하는 경상좌도 수군절도사가 주재하는 좌수영이 있고, 그 산하의 속진으로 부산포?다대포?서생포?개운포?서평포?포이포 등이며 이들 지역은 모두 성을 갖추고 있고, 수군만호가 주재하였다. 그 외에도 페진이 삼각형으로 표시되어 있다. 해운포 폐진 부근에는 지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 유명한 해운대가 있다. 산의 절벽이 바다 속에 빠져 있어 그 형상이 누에의 머리와 같고, 각종 나무들로 웅창한 숲을 이루며 신라 때 최치원이 字를 海雲이라고 하였다 한다. 해운대 앞에 위치한 관음암, 석우암, 요암, 불암 등의 이름이 재미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오륙도도 있고 만세덕비라는 섬도 있다. 절영도에는 목장이 있고, 유명한 태종대가 위치하고 있고, 또한 신사가 있었다. 일본인이 건너와서 거주하였던 초량 왜관이 있고, 그 옆에 있는 永嘉臺는 1614년(광해군 6) 巡使 權昐이 땅을 파서 호수를 만들고, 전선을 감추고, 작은 언덕을 쌓아 臺를 삼았다. 권공이 즉, 영가인, 즉, 안동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도의 우측 상단에 명지도가 있는데, 그 가운데 ‘소금 굽는 일이 가장 성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명지도는 낙동강 하구에 위치하여 구운 소금을 배로 멀리 상주 낙동진까지 운반하여 판매를 하였다. 명지도 우측에 있는 몰운대는 경치가 아름다워 해운대와 필적한다고 하였다. 그 위쪽에 칠점산을 7개의 점으로 표시한 점이 재미가 있다. 가덕도진, 제포진, 안골포진에는 첨사가, 그 외 청천보, 신문보, 풍덕포보에는 별장이 주재하였다. 웅천 읍치 아래에 있는 웅포성은 왜인이 쌓은 왜성이다. 지도의 좌측 하단에 통영이 나타나 있다. 웅장한 2층 문루가 입체감 있게 서 있다. 통영의 성은 둘레가 1만 1천에 달하는 거성이었고, 본영 수군의 속읍은 거제 외에 10개 군현에 달하고 본영과 속읍?속진의 배가 거의 150척에 달하였다. 충렬사는 서문밖에 있고, 충무공 이순신을 봄가을에 제사지낸다. 충렬사는 1614년(광해군 6)에 세워졌고, 1723년(경종 3)에 사액 되었다. 큰 사각형으로 표시된 세병관은 통영의 객사이다. 統虞候留防은 1753년(영조 29)부터 바람이 순조로우면 6개월 간 우후가 머물러 지켰던 곳이다. 통영 부근 거제도에도 영등진, 구조라포진, 옥포진, 장목포보 등 진보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거제도의 구조라포에 ‘바람을 기다려 대마도를 왕복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거제도와 대마도 사이에 통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부르는 진해는 옛 웅천 읍치의 서쪽에 계획 건설한 도시이고, 조선시대의 진해현의 치소는 현재 마산시 진동면 사동리 부근에 있었다.
군현의 치소는 노란색의 원, 도로는 붉은 색, 군현의 경계는 굵은 노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한 눈으로 식별하기가 쉽다. 사천 읍치의 좌측 우조창은 일명 가산창이라 불리는데, 1760년(영조 36)에 조 엄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고, 진주?곤양?하동?단성?남해?사천?고성의 서북면, 의령 서남면의 전세와 대동을 거두어 이곳에 수납하였다가 조운으로 서울로 운반하였다. 우조창 우측의 大觀臺는 만죽산의 절정에 있어 여러 무리의 봉우리들을 굽어보고 있다. 李 楨 선생이 처음 이 대를 짓고, 그것을 靜觀臺라고 부르고, 여러 학생들을 모아 강학을 하였다. 퇴계 이 선생이 이 대에 놀러와서 개관으로 고쳤다. 사천 읍치 남쪽의 삼천포보는 정유재란 때 石曼子가 이곳을 근거로 일어났다. 울산의 島山과 순천의 倭橋를 三窟이라 칭하였다. 이 보에 있는 성을 왜중성이라고 불렀다. 삼천포와 창선도는 진주목의 월경지에 해당한다. 창선도에는 진주목에 관리하는 목장이 있다. 남해 바다의 섬과 해안에는 다른 지도와 달리 물고기와 소금의 산지 위치를 표시해놓았다. 그리고 해안에는 사량진, 구소을비포진, 당포진 등의 성을 갖춘 진과 옛 폐보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남해도 위쪽 끝에 勝捷碑가 있는데 1598년 노량해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다. 지도에는 나타나 있지 않은 충렬사가 있는데, 이는 1633년(인조 11)에 세워지고, 1663년(현종 4)에 사액 받았다.
광양의 진산은 읍치 북쪽에 위치한 白鷄山이다. 산머리에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 샘이 있으며 샘 밑에서 흰 구름이 때로 일어난다. 무릇 비는 것이 있으면 문득 효험이 있고 재계하는 것을 삼가지 않으면 샘이 마른다고 한다. 그 아래에 있는 옥룡사는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순천 읍치의 아래에 있는 인제산이 이 고을의 진산이고 고성이 있다. 윗 쪽에 보이는 계족산의 아래에 정혜사가 있는데, 이 절에는 佛齒가 있다고 전한다. 순천 읍치의 아래에 보이는 倭橋는 왜의 적장 행장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아래의 좌수영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주재하였다. 그 위의 흥국사는 여수의 유명한 사찰이다. 관방 시설로는 좌수영 외에 고돌산진과 여러 크고 작은 성이 있다. 목장으로는 묘도, 곡화목장, 장도목장이 위치하고 있다. 부유고현 부근에는 우리 나라의 3대 사찰에 들어가는 송광사와 선암사가 위치하고 있다. 낙안 읍치는 산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낙안 읍치의 오른쪽에 있는 石窟은 화현산의 허리에 있다. 대개 돌이 집과 같고, 남쪽에 壁門이 있고, 문안이 사방이 평평하여 10여 명이 앉을 수 있고, 또한 그 안에 북벽이 있는데 구멍이 있고, 구멍 가운데가 마치 독과 같다. 물이 신령스러워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물은 넘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약수라 부른다. 동복 읍치의 위쪽에 있는 창랑정은 화순 물염적벽의 절경의 일부이고, 그 위의 옹성은 험하기로 유명한 성이다.
바다로 내달리는 산세가 잘 표현되어 있고, 영산강과 그 지류들의 심한 굴곡이 실감 있게 보인다. 다른 지도와 비교하여 폐현 혹은 고현이 많이 나타나 있다. 또한 영산강 유역을 따라 창고가 입지한 것은 수운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함평의 다경, 나주의 삼향, 진도의 명산 등 월경지가 다수 분포하고 있다. 능주 읍치의 아래 쪽 천불산에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운주사가 있다. 좌우의 산등성이에 있는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 개다. 또 석실 둘이 있어 석불과 서로 등지고 앉아 있다. 장흥 읍치 위쪽의 가지산 아래에 寶林寺가 있는데, 그곳에는 신라의 司馬金潁이 지은 普照禪師의 塔碑銘이 있다. 장흥 읍치의 오른쪽에 있는 벽사역은 9개의 역을 거느린 찰방역이었다. 강진 읍치의 북쪽에 보이는 병영은 전라도병마절도사가가 주재하는 곳이다. 다른 군현의 읍치와 다르게 장흥, 강진, 무안의 읍치는 두 개의 원으로 그려 읍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남평 읍치 좌측의 王子臺는 삼국 때 왕자가 진에 머물렀던 곳이라 전하고, 여전히 쌓은 성과 못이 있다. 나주 읍치의 북쪽에 있는 금성산은 읍의 진산이며, 견고하기로 유명한 금성산성이 있다. 국 초에 나주에 漕倉과 倉城이 있어 17개 읍의 전세를 거두어 보관하였다가 서울로 운송하였으나, 1512년(중종 7)에 조창을 영광의 법성포로 옮겼다. 대신에 정조 때 임피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제민창과 강창이 있었다. 나주 읍치의 우측에 있는 청암역은 주변의 11개 역을 거느린 찰방역이고, 그 아래의 앙암은 노자암이라고 하는데, 그 밑에는 물이 깊어 헤아릴 수 없는 데 속설에 용이 있다고 한다. 바위 밑에 구멍이 있는데 조수가 밀려갔을 때는 보인다고 한다.
지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여러 섬을 나타낸 것이다. 지도에서 바다는 약간의 푸른색을 넣어 표시를 하였고, 고현은 검은색의 점으로 그리고 감목관은 붉은 색의 사각형으로 표시하고 있다. 아울러 군현의 경계를 굵은 노란색의 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압해도, 장산도, 흑산도와 같이 비교적 큰 섬은 옛날에 현의 지위를 차지하였던 곳으로 현의 터가 남아 있다. 비교적 큰 섬의 경우 섬의 둘레를 빠짐없이 기록하여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하였다. 흑산도진에 처음에는 별장을 두었으나 후에 수군만호를 두었다. 압해도, 장산도, 자은도에 있는 목장은 모두 망운목장에 속하였다. 다경포진은 우도 수군첨절제사가 주재하는 임치진에 예속된 성을 가진 중요한 진이었다. 흑산도는 南宋에서 고려로 갈 때 반드시 경유해야 할 해상교통의 요지로서 南宋의 사신들이 묵어가던 使行?舍의 유지가 남아 있다. 창고는 다경포, 압해도, 장산도에 위치하고 있다.